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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해외여행 가기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나는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 것 같다. 해외도 자주 나가고 국내 여행도 자주 간다. 2주 연속 주말에 집에만 있었던 적이 별로 없던 것 같다. 당일치기로 산이라도 간다.


어렸을 때에는 워낙 가난해서 여행을 갈 생각을 못 했지만, 사실 우리 어렸을 때에는 해외여행을 가려면 나라의 허락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다른 집도 해외여행은 잘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시절도 좋아졌고, 우리 집도 부유하지는 않지만 가난에서는 벗어났기 때문에 이제는 1년에 한 번쯤은 엄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엄마와 해외여행을 갈 때에는 몇 가지 고민되는 게 있다.


우선 짝이 맞지 않는다.


엄마와 여행을 갈 때에는 여자 한 명이 더 있는 게 낫다. 그래야 가령 온천을 가더라도 편하고, 하다못해 화장실이라도 같이 갈 수 있다. 나는 혼자이기 때문에 누나네가 같이 갔으면 좋겠는데, 누나네는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다.


누나네에는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가는 여자애 조카 하나가 있는데, 누나와 조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외를 가 본 것은 내가 엄마와 함께 가면서 데리고 간 오키나와가 유일하다. 그때 조카는 어린이집 다닐 때였는데, 친구들한테 “일본에 가면 이런 게 있어”라며 마치 일본을 다 아는 것처럼 자랑을 했다고 한다. 조카가 본 일본은 오키나와가 전부라서, 아마 조카에게 일본은 야자수와 소철나무가 우거지고 푸른 바다에 사람도 별로 없는 열대 섬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형은 해외여행을 싫어한다. 그래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다. 누나나 매형이나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를 ‘국내에도 좋은 게 많다’ 거나 ‘시간이 없다’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아닌 것 같다. 좋은 것으로 따지면 그냥 집에서 안마의자나 하면서 TV를 보는 게 제일 좋긴 하다. 여행을 ‘좋은 것을 보려고’ 하는 때도 있겠지만 그냥 ‘그냥’ 하는 때도 있다. 여행 자체가 좋아서, 낯선 곳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싶어서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해외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또 마찬가지로 굳이 국내가 아니어도 괜찮다. 그래도 굳이 내가 해외를 고집하는 이유, 특히 엄마와는 해외여행을 가려고 하는 이유는, 엄마는 내가 없으면 해외를 나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데리고 가야 한다.


아무튼 누나네는 항상 핑곗거리가 있어서 해외에 가지 않으니 여자는 엄마 혼자다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온천을 가거나 할 때는 살짝 불안하기는 하다.


둘째로, 체력을 생각해야 한다.


엄마는 해외여행 경험이 꽤 많지만, 그래도 굉장한 이벤트이기 때문에 전날 잠을 잘 못 잔다거나 긴장을 하곤 한다. 그래서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면 병이 잘 난다. 유후인에 갔을 때에도 몸살이 났고, 타이베이에서도 하루는 호텔에 누워만 있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호텔을 어디로 정할지, 밥은 어디서 먹어야 할지, 교통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고,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엄마와 함께 헤매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그러니 그냥 맘 편하게 여행사 패키지를 생각하게 된다.


여행사 패키지는 가격대가 다양하지만 그래도 비싼 게 좋긴 한 것 같다. 무조건 노팁, 노쇼핑, 노선택관광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체력소모도 덜하고 감정소모도 덜 하다. 그러다 보니 패키지임에도 개별여행에 비하여 돈이 배로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또 막상 이런저런 패키지 상품을 보여주면 맘에 들어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런저런 얘기가 나온다. 가령 중국은 풍경이 참 좋긴 한데 사람이 많고, 질서도 없고 하니까 그런 건 별로다. 또 일본 패키지는 가본 곳을 피해서 가려면 독특한 상품을 찾아야 하는데, 그러면 또 모객이 되지 않아 출발이 확정될 때까지 불안 불안한 상태로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엄마 친구분 중에 어디를 가봤는데 별로라더라,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또 거기는 흥미가 떨어진다. 마음에 딱 맞는 상품을 찾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결국엔 또 자유여행으로 해야 한다.


엄마와 해외 자유여행을 몇 번 갔지만, 항상 어려운 것이 숙소다. 숙소 찾으러 왔다 갔다 하기 힘드니까 결국엔 역 근처나 교통 편한 곳으로 정해야 하는데, 그러면 엄청 비싸고 가성비도 떨어진다. 여행사 패키지로 가면 그냥 버스로 데려다 주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안 해도 되는데, 참 숙소 정할 때 생각해야 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또 교통수단도 고민해야 하는데, 나라마다 다르겠지만 철도는 그나마 괜찮은데 버스는 좀 힘들 때가 많다. 특히 예약이 되지 않는 버스를 타야 하면 불안 불안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게 힘드니까, 엄마한테 그냥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관광 말고 그냥 한 곳에 있으면서 느긋하게 남이 해 주는 밥 먹고 온천 같은 거나 하면 어떨까 물어보니, 그건 좀 아쉽다고 한다. 사실 엄마와 동갑인 같은 동네 변호사님한테도 이 부분을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가령 친구와 온천 여행을 가면 진짜 온천을 위주로 맛난 거 먹고 동네 쇼핑이나 하고 오는데, 변호사님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변호사님도 꼭 체력 닿는 데까지 관광을 하고 와야 한다고 했다. 거기까지 갔는데 언제 또 온다고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안 갈 거면 그냥 딱 그 정도인 것이고, 정말 좋았다면 그냥 다음에 또 가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갔던 데를 또 가는 것은 싫다고 한다. 세대 차이인지 취향 차이인지 확실치는 않으나 그 변호사님하고 엄마 생각이 비슷한 것을 보니 엄마 나이의 세대에서의 보편적인 생각인 것 같다.


정리해 보면,


결국 패키지는 맘에 드는 게 별로 없으니까 자유여행으로 해야 하는데, 여자 짝꿍이 없다는 것도 생각해야 하고, 교통이 편한 곳에 숙소를 정해야 하고, 숙소 근처에서 진득하게 있는 것 말고 여기저기 관광도 해야 하지만, 관광하러 가는 교통편도 좋아야 한다.


그러면, 그냥 비행기와 호텔만 예약하고 나머지는 현지 여행 상품으로 하는 게 제일 편하다.


다만 이때에도 문제가 있는데, 가령 성수기 때에는 사람을 아주 꽉꽉 채워서 가기 때문에 좀 불편하다. 그리고 밥은 알아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좀 귀찮긴 하다.


올해도 이런저런 패키지 상품을 뒤적뒤적거리다가 결국엔 또 비행기표와 숙소를 예약하고 현지여행 상품을 두 개 예약했다. 엄마가 조카를 데리고 가고 싶어 했는데 누나네는 이런저런 핑계로 안 간다고 조카만 데리고 가라고 하는데, 학교에서 단체관광이 아닌 이상 미성년자를 부모 없이 데리고 해외를 나가면 이런저런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 있어서 힘들다.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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