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를 읽고 생산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쉴 때도 여러 가지 이유로 텍스트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서 여전히 콘텐츠가 빈약하고 또 종이책처럼 빨리빨리 넘겨서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저 수많은 콘텐츠를 그저 휴대폰이나 패드만 있으면 볼 수 있다는 결정적인 장점 때문에 이용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나름 꽤 오래 밀리의 서재와 윌라 오디오 북을 모두 이용해 보면서 현재 시점에서 느낀점을 그냥 소소하게 얘기해보려고 한다.
일단 콘텐츠가 많다. 그런데 종이책이라면 나오기 힘든 품질 낮은 콘텐츠가 너무 많다. 편집도 안 하고 워드로 대충 만들어 낸 콘텐츠가 여러 사람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콘텐츠와 동일한 선상에서 보인다. 그러니 전자책으로 대충 만들어서 돈벌이를 하려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있다. 그런 저품질의 콘텐츠를 걷어내고 나면 정작 보고 싶은 책은 없을 때가 많다. 출판사에서도 정말 잘 팔리는 책들은 구독서비스에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양질의 콘텐츠가 빈약한 것에 비해 나로서는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읽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책, 가령 돈 버는 방법에 관한 책이 너무 많다.
사실 내가 가장 쏠쏠하게 이용한 콘텐츠는 여행 가이드북이었다. 한 권 한 권을 따로 사면 꽤 많은 돈이 드는데, 특히 장기여행을 할 때에는 종이책의 무게를 감당하지 않아도 되고, 또 저품질의 책을 잘못 선택했더라도 추가로 더 드는 돈이 없어서 좋다.
외국어 공부를 할 때도 꽤 괜찮았다. 결정적으로 요즘엔 필기도 할 수 있어서 패드가 있으면 그냥 종이책이나 다름없다.
요즘 웹툰과 웹소설이 많이 생겨서 가볍게 시간 때우기에도 좋다. 다만 특히 웹툰은 19금 콘텐츠의 비중이 너무 높다 보니 스토리는 없이 화면만 자극적이지 않나 싶다.
오디오북은 문제가 심각하다. AI TTS도 오디오북 카테고리에 넣어놨다. 그게 왜 오디오북인가 싶다. 인간 낭독 오디오북 중에는 완전판이 아닌 요약본이 많다. 콘텐츠 원작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글을 요약본으로 읽는다고 한다면 굉장히 기분이 나쁠 것 같다. 요약본도 내용을 제대로 축약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문장 건너뛰기다. 노래방으로 따지면 간주점프 같은 식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오디오북도 있으니까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구독을 했다가, 그 책을 다 읽으면 다시 구독을 취소하는 일이 반복된다. 보통은 전자책 1권을 사는 것보다 구독료가 더 쌀 때가 많기 때문이다.
윌라 오디오북은 역시 오디오북 콘텐츠가 풍부하고 품질도 좋다. 길을 걸을 때나 대중교통에서, 운전을 할 때, 잘 때 듣기 좋다.
인간 오디오북의 질이 워낙 좋기 때문에 흠잡을 데가 없다. 윌라에서 제작하지 않은 오디오북 중에서는 가끔 효과음이나 배경음 같은 쓸데없는 잡소리가 들어갈 때가 있기는 한데, 윌라에서 제작한 것은 잡소리가 적고 귀에 크게 거슬리지도 않는다.
밀리의 서재와 달리 윌라 오디오북은 중간에 구독을 끊기가 어렵다. 이건 오디오북의 특징 때문이다. 전자책처럼 빨리 볼 수가 없으니까 콘텐츠 하나를 소비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구독이 끝나갈 때쯤 뒷부분이 좀 남아 있으면 연장을 하게 된다. 그 뒷부분은 다 듣고 나서 남은 기간이 아까우니 또 다른 콘텐츠를 듣다가 또 구독을 연장하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글자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은 일부 콘텐츠에서 자막을 제공한다고는 하는데 내가 본 것 중에는 없었다. 글자로 읽는 게 아니어서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고, 특히 사람 이름의 경우 정확이 어떤 글자를 발음한 것인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다. 또 다 알고 있는 잔소리도 꾸역꾸역 들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이건 윌라의 문제가 아니라 오디오북의 한계이기도 하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동시에 제공하는 경우도 있는데, 연계성이 좋지 않다. 가령 전자책으로 읽던 부분까지 오디오북에서도 반영되었으면 좋겠는데 서로 따로 논다.
전자책과 달리 오디오북은 내가 원하는 부분을 찾아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간단하게 개요나 줄거리라도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제공되지 않는다.
전자책은 최근 양을 늘리고 있는 것 같은데, 저품질 콘텐츠의 비중이 밀리의 서재에 비해 너무 높다. 그냥 숫자만 늘리려고 하는 티가 많이 난다. 밀리의 서재에서도 푼돈 벌기용 저품질 콘텐츠 때문에 원하는 콘텐츠를 찾는 게 불편했는데, 윌라의 전자책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성우 낭독 버전이 없으면 AI TTS를 이용해도 되는데, AI가 밀리의 서재보다 품질이 훨씬 좋다. 매우 자연스러워서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앱의 UI, UX는 많이 아쉽다. 특히 전자책은 그냥 텍스트를 보여주기만 할 뿐이어서 밀리의 서재와 같이 필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둘 다 구독 중이다. 겹치는 콘텐츠가 많아서 좀 아깝긴 한데, 밀리의 서재는 오디오북이 아쉽고, 윌라는 전자책이 아쉽다. 윌라는 잘 때 많이 듣고 밀리의 서재는 그냥 책 읽을 때 본다.
구독료가 둘 다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저품질 콘텐츠 양을 늘려 단순히 숫자만 올리는 게 구독자 증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은데, 두 서비스 모두 저품질 콘텐츠가 너무 많다. 그런 콘텐츠 제작자에 쓸 돈을 차라리 UI, UX를 개선하고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데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실제 이용자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 구독해서 읽은 콘텐츠가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인터넷 블로그보다 품질이 낫을 때에는 이걸 돈을 주고 계속 구독할 이유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