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쪽 변호사는 왜 서면을 항상 기일 전날 내요? 무슨 전략이 있는 건가요?
변호사가 서면을 기일 전날이나 기일에 임박해서 내는 때가 있다. 그러면 의뢰인들은 어떤 전략이나 꼼수인 게 아니냐고 질문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좀 다르다.
나는 서면을 좀 빨리 내려고 하는 편이다. 처음부터 변호사가 아니었고 회사원 생활을 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일을 묵혀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플래너에 할 일거리가 수북이 쌓여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웬만한 건 그냥 생각날 때 바로바로 해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늦게 내더라도 기일 2주 전에는 제출한다. 그렇지 않으면 좀 불안하다.
그런데 서면을 꼭 늦게 내는 변호사들이 있다. 사건과 관계없이 특정 변호사는 항상 늦게 낸다. 그냥 사건은 하기 싫어 죽겠는데, 기일이 다가오니 억지로 서면을 짜내서 낸 것이다. 마치 카드 돌려 막기를 하듯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뭐라도 써서 내야 하니 대충대충 아무 말이나 써서 낸다. 사건 파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사실 의뢰인이 늦게 내 달라고 요청하는 때도 있지만, 나는 잘 응하지 않는 편이다. 보통 “왜죠?”라고 되묻곤 한다. 이길 사건이고 떳떳하면 빨리빨리 해서 끝내는 게 낫지 일부러 시간을 끌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재판이 지연될수록 손해다. 재판을 몇 번 나가야 하는지는 사실 수임료를 결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 사건은 한 번만 나가면 될 것 같다 싶으면 수임료가 싸다. 그걸 고급지게 ‘소송 난이도’라고 포장하기도 한다. 그러니 변호사가 사건을 일부러 끄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아마 정상적으로 일하는 평범한 변호사들은 의뢰인이 일부러 늦게 내달라고 하면 대부분 거절할 것이다.
아주 드문 케이스에서 시간이 중요할 때가 있다. 가령 딱 두 달만 있으면 돈이 들어오는데, 그 두 달만 기다려줬으면 하는 경우다. 12년 차가 되는 동안 딱 한 번 그런 사건을 해 보긴 했다.
어쨌든, 서면을 일부러 늦게 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고, 대부분은 그냥 그 변호사나 사무실이 이상한 것이다.
그런 느낌이 있다. 가령 원고가 서면을 내고, 이에 대해 피고가 반박하는 서면을 냈는데 기일 직전에 원고가 재반박하는 서면을 냈다면, 판사는 결국 원고가 낸 마지막 서면을 보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는 있다.
그런데 기일에 임박해서 내면 판사도 못 볼 때가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꼼꼼히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니 늦게 낸다고 해서 유리하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반박이 필요하면 다음 기일을 잡아도 되고, 참고서면으로 제출해도 된다. 서면을 늦게 냈다는 이유만으로 유리해지는 것은 아니다.
판결을 판사가 내는 거니까 판사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아도, 서면이 늦게 들어오면 짜증 날 것 같다. 내일 재판 어떻게 해야 하나 준비를 해 놨는데, 갑자기 서면이 들어오면 또 읽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늦게 낸 것을 몰랐다가 재판하면서 알게 되었다면 더더욱 짜증 날 것이다.
나는 상대방이 서면을 늦게 내면 그것을 역이용할 때가 많다. 자기주장이 사실이고 떳떳하다면 늦게 낼 이유가 없지 않으냐고 공격할 때도 있고, 상대에게 반박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으니 더 이상 시간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공격할 때도 있다.
판사도 사람이다 보니 상대방이 시간을 끈다고 마구마구 공격을 해 대면 우리 쪽에 조금 어드벤티지를 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딱 그런 느낌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정색하고 공격을 한다. 겨우 서면 하나 늦게 냈다고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주 면박을 준다.
서면을 늦게 내는 변호사는 대개 실력도 엉망이다. 일처리가 느리니까 서면도 늦게 나오는 것이다. 물론 업무가 과중할 때도 있다. 그러면 수임을 안 해야 한다. 나도 한 달에 4건,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건 이상을 수임하면 꽤 바쁘다. 그래서 사무실 홈페이지에 당분간 수임을 안 한다고 올리는 때가 많다.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한 달 걸러 한 번씩은 그런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업무가 너무 많으면 사건 하나하나를 꼼꼼히 볼 시간이 없다. 그런 곳에 사건을 맡기면 의뢰인 입장에서도 불안 불안하다. 물론 업무가 느리거나 변호사가 게으르다고 나쁜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변호사가 아주 엉망이더라도 그냥 이길 사건이어서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과정도 빠르고 깔끔하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