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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에서 오로라 보기

그냥 오로라를 보고 싶었다. 북극까지는 아니더라도 ‘북극권’이라는 곳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을 북쪽으로 올라는 가고 싶은데, 어디로 갈지는 좀 고민이었다. 비용과 시간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트롬쇠로 가기로 했다.


트롬쇠는 유럽 최북단 도시라고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사람이 꽤 많은 도시 중의 최북단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더 북쪽도 있으니까 말이다. 트롬쇠를 지도에서 찾아서 여행계획을 세우다 보면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위로 올라 가면 캐나다가 나온다. 그걸 ‘위쪽’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국에서 트롬쇠로 가는 것은 좀 고생스러울 수 있지만, 유럽에서는 항공편이 꽤 많다. 비행기 표가 싸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 갈 정도로 비싸지도 않다. 베르겐에서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고민되는 Widerøe 항공을 타고 트롬쇠 공항으로 갔다. 편도 1인에 1,399 크로네.


내가 도착한 날은 3월 4일. 한국이라면 따뜻하지는 않더라도 추위가 살짝 가실 때지만 트롬쇠는 여전히 눈밭이다. 나는 여기서 운전은 못 할 것 같다.


E2D5AF80-C1B7-4B48-807B-8B9894D6FF55_1_102_a.jpeg 숙소 앞 길


부킹닷컴에서 숙소를 예약했는데, 특별히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냥 호스트 집의 방 한 칸을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욕실이며 여러 가지를 공유해야 하는데, 심적으로 좀 불편했다. 싸면 싼 이유가 있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뭐, 절대적인 가격으로 생각하면 싸지도 않았는데 트롬쇠 숙소비가 워낙 비싸니까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숙소 호스트가 오로라 헌팅도 하는 사람이라서 둘째 날 오로라 투어 예약도 했다. 숙소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았는데 누군가 후기로 추천을 했기 때문이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반쯤이었는데 짐도 풀고 간단히 밥도 해 먹고 나니 딱히 할 게 없었다. 주변에 편의점이나 무슨 상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없는 아파트 촌이었기 때문이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즉흥적으로 배를 타고 오로라를 감상하는 투어를 예약했다. 가격도 노르웨이 물가치고는 받아들일만했다. 아니 노르웨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싼 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배를 탔는데, 당일 겨우 두어 시간을 남겨 놓고도 예약이 되는 이유가 있었다. 배에 사람이 꽤 많이 탔다. 북적북적까지는 아니었지만 자동차가 아니니까 좀 태울 수 있는 승객에 여유가 있는 것 같았다.


배가 출발하자 북극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스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때렸다. 선실 밖이 워낙 추우니 다들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 기대가 컸다. 왜냐하면 사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이미 하늘에 희미하게 오로라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이 나왔다. 어디에 오로라가 보인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서 보니 검은 하늘에 초록의 진한 오로라가 빛나고 있었다. 초록빛과 붉은빛이 하늘에 마치 잉크를 떨어뜨린 듯했다. 오로라는 점점 진해지기도 하고 넓어지기도 했다가 슬슬 사라졌다.


그리고 또다시 나타나다가, 아예 하늘의 절반을 무지개처럼 빙 둘러버렸다. 카메라로 봐야 더 잘 보인다고 하는데 너무 진해서 그냥 맨눈으로도 너무 잘 보였다.


열심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으려 했으나, 이내 깨달았다. 배가 흔들려서 사진이 잘 안 나왔다. 그렇다고 삼각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준비성이 좋은 사람은 삼각대나 셀피스틱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우리처럼 흔들리는 배 안에서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고 배 난간에 손을 고정한다던가 별별 방법을 고안해보고 있었는데, 쉽지 않았다. 우리도 이내 포기하고 그냥 눈과 가슴에만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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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낮에 시내 구경을 했다. 마트도 가고 여기저기 상점도 다녔다. 딱히 뭔가 남기지는 않았다. 물가가 너무 비쌌다. 이른 저녁 내지는 약간 늦은 오후에 숙소로 돌아왔다. 오로라 헌팅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차로 가는 것인데 다른 사람도 예약이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공항에서 다른 일행을 태웠는데 공교롭게도 초로의 한국 분들이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참 한국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이런 곳에서까지 만나게 되니 반가운 마음도 있었다.


차는 한 시간쯤을 달려 넓은 공터에서 멈췄다. 주변에 인공 불빛이 별로 없는 그냥 주차장 같은 곳이었다. 역시나 둥글게 오로라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전날 배에서 실패를 한 경험이 있었기에 마트에서 급하게 장만한 셀피스틱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이 고정되어 잘 찍히기는 하는데, 결과물이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다. 안타깝게도 배에서 봤던 오로라보다 별로 진하지는 않았다. 가격은 4배가 넘었는데 좀 실망스러웠다. 차로 한참을 달려도 실패한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 이틀 연속으로 오로라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기는 했다. 그래도 너무 비싸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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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버스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야생의 말코손바닥 사슴을 볼 수도 있다고 해서 예약했는데, 그것 외에도 그냥 이런저런 동네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가이드가 저기 사슴이 있다고 해서 보니까 검은 점이 꼬물락 거리는 게 사슴이 맞나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대체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의 풍경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날씨도 꽤 좋았다. 고지대도 아닌데 하늘이 가까웠다. 그냥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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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를 마치고 시내 구경을 좀 하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오로라는 정말 어디서 자랑할만했다. 돈 쓴 보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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