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사무실을 다른 변호사님에게 양도하면서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열심히 놀다가 이탈리아쯤 왔을 때 이제 슬슬 재개업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폴리에서 소렌토를 지나가면서 유튜브로 파바로티가 부른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들었다.
딴 얘기지만 자동차 이름은 된소리다. 소렌토, 산타페, 소나타가 아니라 쏘렌토, 싼타페, 쏘나타다. 나는 된소리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동차메이커가 그렇게 한 이유가 있겠지 싶다.
파바로티의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끝나고 이어서 <네순 도르마>가 나왔다. 파바로티는 역시 파바로티구나 싶었다. 그냥 슈퍼 가다가 만날 아저씨 같은데, 언제 들어도 역시 두근두근하다.
그러다 내 마음을 울린 가사가 나왔다.
빈체로
vincero
승리할 것이다. 승리하리라.
변호사 사무실 이름으로 딱이지 않은가!
그런데 찾아보니 이미 다른 변호사님이 쓰는 이름이었다. 아쉬운 대로 사무실 이름을 <오 미오 밥비노 카로>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네순 도르마>는 오페라 <투란도트>에 나오는 아리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부른 적이 있다. <나물 캐는 처녀>라는 곡으로 연극을 만들어 보라고 하셨다. 왜 날까? 싶기는 했다.
그때 나는 공부를 잘하던 아이는 아니었다. 비평준화 시절이기는 하지만 등수를 앞에서 세는 것보다 뒤에서 세는 게 훨씬 더 빠른 상태였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히피 내지는 한량같이 살았던 것 같다. 자율학습 시간에 도망가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오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선택했지만, 그 당시 유행하던 컴퓨터 관련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서 적당한 상을 타오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글 쓰는 대회에 나가서도 적당한 상을 타오곤 했다. 그래서 다들 얘는 뭘 하려나 싶긴 했을 것 같다.
어쨌든 당시 음악선생님의 주문을 받은 나는 뭘 쓸까 고민을 하다가, <투란도트>를 조선시대로 각색했다. 사실 여자 주인공이 처음에 나물을 캐며 등장을 하는 것 외에는 <나물 캐는 처녀>라는 곡과 관련은 없었다. 물론 남학교니까 처녀 역도 남학생이 했다.
그렇게 나는 우리 학교 2학년 각 반마다 나물 캐는 처녀 남학생 한 명씩을 만들어 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음악선생님도 그냥 재미로 시킨 것 같다.
뭐, 결국 우리 사무실 이름은 그냥 별생각 없이 오변호사법률사무소라고 지었다. 이름을 다 넣는 건 너무 시골스러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