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종영되었지만 <사랑과 전쟁>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시즌 1에서 배우 신구 씨의 대사인 ‘4주 후에 뵙겠습니다’가 유행어처럼 되었다. <사랑과 전쟁> 시즌1은 조정기일의 상황을 연출한 것으로 보이는데,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우선 ‘4주 후’라는 것은 우리나라 이혼 절차에는 없다. 어디서 탄생하게 된 대사인지는 모르겠다.
<품위 있는 그녀>라는 드라마를 보면, 극 중 우아진(김희선 역)과 안재석(정상훈 역)이 이혼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 중 판사는 양쪽의 말을 듣고 바로 판결을 내리고 법봉(판사봉)을 두드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러한 절차는 없다. 사실 극 중 재판을 하는 장면은 실제와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다. 어느 점이 다른지를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냥 다 다르다.
사람들이 TV나 영화를 보고 재판 과정을 오해할 때가 많다. 법에는 구두 변론, 즉 법정에 나와 말로 변론을 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으나, 재판부 한 곳에서 한 시간에 수 건에서 수십 건의 재판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한 사건에 주어지는 시간은 많아야 5분남짓이다. 재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건은 대개 당사자에게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지 않아 법과 제도를 잘 모르는 때이다. 양쪽 다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으면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할 것도 없으므로 대개 다음 일정을 잡고 끝낸다. 30초 내로 끝날 때도 많다.
가령 마지막 재판이라면 대개는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간다.
판사 : 2020가단OOOOO 원고 김** 피고 이**
원고 변호사 : 원고 대리인 ***입니다.
피고 변호사 : 피고 대리인 ***입니다.
판사 : 원고 2020년 9월 1일 자 준비서면 진술하시고,
원고 변호사 : 네.
판사 : 피고 2020년 9월 7일 자 준비서면 진술하시고,
피고 변호사 : 네.
판사 : **은행에서 사실조회 회신이 도착했습니다. 양쪽 더 하실 게 있나요?
원고 변호사 : 없습니다.
피고 변호사 : 없습니다.
판사 : 그럼 변론을 종결하고 11월 8일 오후 2시에 선고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언어습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실제 재판에서는 ‘진술’을 말로 하지 않는다. 서면(서류)으로 미리 제출하고 법정에 가서는 ‘네’ 또는 ‘진술합니다’라는 말로 진술한 것으로 간주한다. 시간이 없어서다. 이혼 소송을 5년, 10년 할 것이 아니라면, 이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혼인 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를 ‘유책배우자’라고 한다. 대개는 외도를 한 경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혼인을 파탄으로 만든 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상대방에게 소송으로 이혼을 청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는 배우자 일방에 의하여 축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대개 서류상으로만 부부 사이일 뿐, 실제로는 남남처럼 지내는 경우가 많다. 유책배우자가 양육비나 생활비도 지급하지 않으면 차라리 이혼을 하여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받고 양육비도 받는 쪽이 나을 때가 많다.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이혼 청구를 받아주는 경우가 있다. 판례에 따르면 ‘상대방도 혼인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불응하는 경우’(대법 2004므1033 판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에 대해 상대방이 반소로 이혼청구를 하는 경우’(대법 87므44, 45 판결), ‘부부 쌍방의 책임이 동등하거나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대법 97므155 판결, 94므130 판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도 받아준다고 한다.
다만, 위와 같은 예외적인 판례를 보고 ‘상대방이 오기를 부리고 있으니 유책배우자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유책배우자는 ‘혼인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객관적으로 명백하게’ 증명해야 하는데,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수시로 바뀌는 것이어서 이혼의사는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의이혼 서류를 제출한 적이 있다거나, 이혼에 관하여 협의를 한 적이 있다거나, 매일 싸운다는 사실로는 부족하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제 판례에서도 사실심 조사기일이나 조정기일에 피고가 ‘원고가 위자료를 얼마를 주면 이혼해 주겠다’라고 한 사건에서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 없이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청구에 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대법 99므1213 판결).
결과적으로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애초에 결혼을 하였으면 외도를 하지 않아야 하고, 지킬 수 없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을 하였으면 배우자로서의 권리도 생기지만 책임과 의무도 생기는 것이다. 결혼은 결혼대로 하면서 미혼일 때처럼 자유롭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A는 B로부터 이혼 소장을 받았다. B는 얼마 전에 크게 싸우고서 집을 나갔는데 한 달 넘게 연락이 없더니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는 B가 괘씸했다. A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로 잘못은 B의 탓이기 때문이다. 소장을 읽어보니 내용도 전부 거짓말이었다. 대응할 가치도 느끼지 못하여 그냥 두었다. 이후 법원에서 몇 번 우편물이 왔으나 회사에 다니느라 받지 못했다. 우체부가 노란색 스티커를 남겨두었으나 찾아갈 시간이 없었다.
바쁘게 살다 보니 몇 달이 지나버렸고 그동안 B에게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회사에 연말정산 서류를 제출해야 해서 가족관계 증명서를 발급받았다.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B가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여 근처 주민센터에 가서 물어보았고 혼인관계 증명서를 떼어 보고서야 B와 이미 이혼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혼 소송을 당한 쪽(피고)에게는 소장과 함께 안내서를 받게 되는데, 그 안내서에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간혹 소장을 받고도 대응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상당히 많은 경우 일부러 소장을 받는 것을 회피한다.
원고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최대한 피고에게 소장을 송달하였음에도 피고의 주소가 불분명하거나 소장의 수령을 회피하면 ‘공시송달’의 방법으로 송달을 한다. 공시송달은 ‘서류를 보관하고 있으니 받아 가라’는 취지를 게시하고(실제로는 대개 관보에 게재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 이후로는 송달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즉 피고가 소장을 받지 않아도 결국 소송은 진행된다.
답변 기한은 소장을 송달받은 때로부터 30일 이내이다. 피고가 기한 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원은 피고가 원고의 주장과 청구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피고가 재판에 출석하지 않아도 재판을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고 법정에 가서 말로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재판 전에 피고의 의견을 판사가 확인할 수도 없고, 법정에 나가서 구두로 하는 말은 기록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원고의 청구를 모두 인정할 것이 아니라면 소장도 받아야 하고 답변서도 제출해야 한다. 이혼을 하기 싫다면, 그 ‘싫다’는 의사를 답변서로 표현해야 한다. 표현하지 않으면 본인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은 판사가 알 수 없다.
상대방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생각이면, 상대방 청구를 모두 인정한다는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하는 것이 좋다.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같은 효과가 생기 기는 하나, 아무래도 법원이 피고의 의사를 알지 못하므로 소송의 진행이 불편하다.
이혼에는 동의하나 피고가 원고로부터 오히려 위자료나 재산분할금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반소를 제기해야 한다. 답변서에 그러한 내용을 쓴다고 해도 판사는 원고가 피고에게 위자료나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 판사는 당사자가 청구한 것의 한도 내에서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양육비는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으나, 그래도 반소를 하는 것이 본인의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어서 옳은 방법이다.
간혹 왜 자신이 ‘피고’인지를 따지는 경우가 있다. 소송을 제기한 쪽이 ‘원고’이며, 그 상대방이 ‘피고’이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개념이 아니다. 부부 일방 중 누가 원고가 되고 피고가 되는지를 누군가가 판단해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을 접수하는 쪽이 ‘원고'이고 받는 쪽이 ‘피고'이다. 원고가 피해자고 피고가 가해자라는 생각은 판사나 변호사나 조정위원 누구도 하지 않는다.
원고가 위자료나 재산분할금을 청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혼만 청구한 상황에서, 피고가 이혼에는 동의하나 원고가 주장하는 사유가 사실과 다른 경우라면 이러한 점을 답변서로 주장할 수도 있고, 반소를 제기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러한 대응은 기분은 나쁘더라도 실질적으로 이익이 없어서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혼의 경우도 혼인신고를 한 법률혼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사실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는 것이고, 법률혼과 마찬가지로 재산분할도 가능하다. 사실혼 관계 중에 외도를 하였으면 상간자(외도의 상대방)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소송에 있어서 사실혼과 법률혼의 차이는 ‘이혼’ 자체를 청구할 수 있느냐의 차이만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다. 사실혼은 ‘이혼’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사실혼은 부부의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계를 끝낼 수 있는 반면, 법률혼은 한쪽 당사자가 이혼을 원하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서만 이혼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