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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기,
입국 ~ 스카즈카 가는 길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로 가는 길은 매우 설레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저녁 무렵에 출발하는 비행기여서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구에서부터 초로의 한국인 남성 몇 명이 서로 술병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종이컵에 남은 술을 바닥에 착착 뿌리고 있었다. 비행기 탑승전부터 이미 거나하게 취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항공사에서 다른 승객을 위해서라도 탑승을 거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술꾼들은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도 승무원들의 만류에도 주정을 부렸다. 저렇게 늙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술꾼들의 행렬은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로의 한국인들은 꼭 공항에서 면세로 산 술을 까 마시고 예외 없이 바닥에 술을 뿌려댔다. 잔을 돌려 쓰는 것이야 자기들끼리 더러운 것이니 그렇다고 쳐도 왜 술을 바닥에 뿌리는지는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나이대가 좀 높은 편이다. 그리고 정말 희한하게도 매너가 없는 사람이 정말 많다. 특히 술. 종일 술에 취해 있을 것이면 왜 비싼 돈을 주고 힘들게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 먼 나라가 아니라 가까운 병의원에서 상담을 먼저 받아 보는 것을 권해주고 싶다.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는 정말 많은 주정뱅이들을 보았지만 다행히 함께 여행하는 팀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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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 비슈케크 직항은 티웨이항공 독점 노선이다. 가격은 거리가 가까운 알마티 노선의 FSC보다 비싸다. 조금 비싼 게 아니라 많이 비싸다. 그런데 기내식은커녕 6시간 반 동안 물 한 잔 주지 않는다. 저비용항공이면 무료 서비스가 없는 대신 가격이 싼 것이 메리트인데, 가격은 더 비싸고 서비스는 없다. 시간대도 좋지 않아서 같은 패키지 일행 중에는 이 가격이면 차라리 알마티로 가는 게 낫지 않았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관광지인 촐폰아타라던가 이식쿨로 바로 갈 수 있는 마땅한 루트가 없고, 수도 비슈케크에는 사실 마땅한 볼거리가 없다. 터널을 뚫으면 될 것 같기 한데,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키르기스스탄 쪽에서 반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삼다수 500ml를 비싼 값에 팔긴 하지만 왕복 100만 원이 넘는 항공료에도 물을 안 주는 것은 너무 치명적이다.


비슈케크 마나스 국제공항은 시설도 굉장히 낡았고 인천공항에 비해서는 상당이 작은 규모이지만 면세점이나 시설 규모가 우리나라 지방공항보다는 큰 것 같다. 제법 있을 것은 다 갖췄다. 입국장에서야 별 게 없는데 출국하면서 보면 생각보다 크다. 공항 출구를 나오면 역시나 수많은 택시 삐끼들이 맞이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까지 공항에서 택시 사기가 많았던 것을 생각하면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입국과정은 복잡하지 않다. 사람이 하는 옛날 방식인데 캠으로 사진을 찍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 준다. 그 외에 무슨 큐알코드를 만들어야 한다던가 종이에 뭔가 써야 한다던가 하는 절차가 없어서 오히려 간단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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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에서 나와 곧바로 가이드를 만났고 ATM기를 찾아 현금을 찾았다. 키르기스스탄은 '솜'이라는 화폐단위를 쓴다. 한국에서는 환전이 되지 않고 키르기스스탄에서도 한국돈은 환전이 되지 않으니 그냥 현지에서 ATM기로 인출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막상 여행 중 이 종이돈은 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냥 기념품으로 마그넷 한 개 살 때만 썼는데, 그것도 사실 카드 결제가 되는 곳도 있다. 중국처럼 QR코드 결제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쓰는지는 모르겠고, 웬만한 상점에서는 카드 결제가 됐다. 그리고 패키지여행에서는 그냥 돈 쓸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솜을 쓸 일이 별로 없는 이유는, 사실 뭘 살 수 있는 데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광지에서 물 한 병 사 먹을 데를 찾기 힘들다. 가게는 물론 그냥 사람 구경하기도 힘들다.


공항에서 나와 여행사에서 마중 나온 버스를 탔다. 중국산 버스였는데 새 차 냄새가 났다.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다. 차장밖으로 처음 본 키르기스스탄의 거리는 낯설었다. 공항 근처라 민가가 드물어서도 그렇겠지만 조명이 별로 없어서 어두웠다. 도로를 달리는 차는 절반은 한국차였는데, 그중에서는 중고택시도 있었고, 모닝이나 스파크 같은 경차도 많았다. 중고차 수입을 많이 했는지 오래된 차도 많았지만 비싼 독일브랜드의 새 차도 많이 보였다.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툭툭이는 전혀 없었고, 오토바이도 드물었다.


한국에서는 연일 폭염이었는데 비슷한 기온의 비슈케크는 오히려 선선한 느낌이어서 반팔에 반바지가 조금 부담스러웠다.


자정이 되어서야 도착한 호텔은 꽤 훌륭한 외관이었다. 방도 오래된 냄새는 있었지만 꽤 넓었다. 수압이 세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물은 잘 나왔다. 개별여행이었다면 훨씬 싼 호텔에 묵었겠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패키지로 가 보니 뜻하지 않게 호사를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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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조식은 적당히 훌륭했다. 여느 호텔 조식이 그렇듯 가지 수는 많고 손 가는 음식은 별로 없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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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을 먹은 후 여행사 버스를 탔다. 비슈케크 시내를 벗어나면서 인가가 드물어졌다. 가이드 말로는 고속도로라고 하는데 길가에 상점도 많다. 그냥 국도 같다.


길가 상점들은 특이하게도 과일가게가 많았고 튜브 같은 물놀이 용품을 파는 곳이 많았다. 간식거리를 파는 곳보다 튜브를 파는 곳이 더 많은 점은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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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가게에 들러 과일 몇 가지를 샀다. 수박이 눈에 띄었다. 수박은 요즘 한국 수박에 비해 색이 연하고 훨씬 컸다. 먹어보면 한국 수박에 비해 조직감이 더 연하고 더 달다. 옛날 수박 느낌이다. 하미과는 오랜만이라 참 맛있게 먹었다. 살구나 자두도 싸고 맛있었다. 전체적으로 예전 중국 신장 자치구를 갔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과일도 비슷하고 음식도 비슷했다.


가이드가 빵을 하나씩 줬는데 유튜브에서 많이 봤던 그 빵이다. 이스트로 잔뜩 부풀리지 않아 질겅질겅 했는데 간이 무척 셌다. 달달해서 맛있다기보다 짭조름해서 맛이 썩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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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한 리조트 옆의 공원에 갔다. 싱가포르 느낌의 분수가 있고 중국에서 가져온 각종 동물의 조각상이 있고 I LOVE HAWAII라고 된 조형물이 있다. 뭔가 다국적이다.


겉은 열심히 조경을 관리하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는데 화장실은 무척 더러웠다. 뜬금없이 동물원이 있었는데 소, 낙타, 토끼 같은 가축에 가까운 동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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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보이는 것은 다 갖다 놔서 뭔가 부조화스러운 모습, 겉은 깨끗하지만 막상 화장실은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은 모습을 보면, 정말 오래 전의 우리나라나 예전 중국을 떠오르게 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옥수수도 하나 사 먹었는데 정말 배가 고플 틈이 없다.


버스는 반은 포장길 반은 비포장길을 달렸다. 쭉 포장이다가 쭉 비포장이 아니라 듬성듬성 포장이었다.


차장 밖으로는 낮은 풀과 험준한 산이 멋들어지게 보였다. 역시 자연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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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달려 읍내 비슷한 곳이 나왔고 한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개별 여행이었다면 대충 아무 데서나 먹었을 텐데 패키지라 호사를 누린다.


야끼소바와 샐러드, 불고기 비슷한 음식이 나왔는데, 역시나 중국 신장 자치구를 갔을 때의 양념 맛과 비슷하다. 양꼬치 가루 맛이랄까? 식사 때마다 가지가 들어간 음식이 참 많았다는 것은 특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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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버스는 달리고 달려 마트에 들렀다. 이번 여행은 사실 버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버스 밖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동네 식자재마트 정도 규모의 마트였는데, 특이하게도 곡식을 원하는 만큼 퍼서 살 수 있었다. 이제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다양한 한국라면도 많았고, 나머지는 그냥 한국의 슈퍼마켓과 비슷했다. 물론 카드결제도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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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버스를 타고 달리고 달려 오늘의 목적지인 스카즈카 협곡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 반이었다. 즉, 아침부터 하루를 꼬박 다 써서 거의 저녁 무렵에서야 도착한 것이다.


키르기스스탄이 엄청 큰 나라는 아니지만 도로 사정이 너무 안 좋다. 그래서 멀지 않은 거리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외로 나가는 대중교통도 열악해서 투어 상품이나 패키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으로 여행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렌터카를 쓰기에는 장시간 비포장도로에 신호등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눈치껏 운전하는 것에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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