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필기구를 좋아한다.
사놓고 전시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실제로 쓰는 필기구를 자주 산다.
손글씨를 많이 쓰는 편이기도 하고, 메모도 자주 한다. 업무를 볼 때에도 손에 펜을 낀 채로 마우스를 작동한다.
상담을 할 때 쓰는 필기구는 라미 알스타 + EF촉 + 이로시주쿠 신카이 잉크의 조합인데, 잉크의 부들부들이 약간 덜 한 게 불만이긴 하다. 윤활제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
손님용으로는 제브라 사라사 그랜드 빈티지 펜대에 0.7mm 리필심을 넣어서 쓴다.
평소 가벼운 메모용으로는 사라사 클립 0.5mm를 쓰는데, 플래너에 작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 미리 수를 좀 줄였다.
특별히 안 좋은 필기구는 있지만, 가령 어떤 볼펜이 다른 볼펜보다 특별히 더 좋다는 건 없는 것 같다. 가령 내가 즐겨 쓰는 사라사 시리즈는 색이 선명하고 잉크 흐름이 좋은 장점이 있지만, 잉크를 엄청 잡아먹는다. 잉크 먹는 귀신이다.
예전에 썼던 제트스트림은 0.5mm는 너무 종이를 긁고 0.7mm부터는 좀 쓸만하다. 유성펜임에도 불구하고 찌꺼기가 거의 생기지 않아 젤펜이나 수성펜에 가까운 필기가 가능하다. 유성이니까 습기에도 강하고 번짐도 없다. 그럼에도 내가 잘 쓰지 않는 이유는 그저 색 때문이다. 유성펜이어서 어쩔 수 없는데 나는 기름기 있는 색보다는 촉촉한 색을 좋아한다.
아무튼 요즘 사라사 클립을 쓰다가 손님용으로 마련한 사라사 그랜드 빈티지를 훔쳐 써 보니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고급지고 바디가 적당히 얇다. 사실 사라사 클립에 제일 큰 불만이 바디가 좀 통통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된다. 다만 메탈바디의 특성상 무게감이 있다.
펜은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긴 하다. 손 글씨를 많이 쓰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글씨는 손가락만 쓰는 게 아니라 팔 전체로 쓴다. 그래서 필기를 많이 하면 팔이 저리고 팔꿈치가 아프다. 손가락에 힘이 많이 들어가지 않다 보니 필기구가 조금만 무거워져도 그 차이가 글씨에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확실히 플라스틱의 가벼운 재질이 좋긴 하다.
그러나 플라스틱 바디의 문제는 너무 싼 티가 난다는 것이다. 실제로 싸기도 하고. 쿠팡을 기준으로 사라사 클립 10자루는 9천 원대에 살 수 있는데, 리필심은 7천 원대에 살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단순히 계산하면 바디 한 개에 200원 꼴인 셈이다. 사라사 그랜드 빈티지가 쿠팡에서는 한 자루에 7천 원대에 파는데 얼핏 보면 한 3~4만 원 정도로 보이기는 한다. 가격대비 겉모습이 훌륭하다.
며칠 고민을 하다가 사라사 그랜드 빈티지 한 자루와 사라사 0.7mm 리필심 10개를 주문했다. 수험생 때처럼 필기량이 엄청나지는 않으니까 꼭 플라스틱 바디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작은 글씨 때문에 0.7mm를 포기하고 0.5mm를 산 건데, 플래너를 다음번에 더 큰 것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사실 플래너 혹은 다이어리도 자주 바꾸었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트래블러스 노트의 감성은 참 좋은데... 이 얘기는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