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간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상대방인 상간자(피고)는 상간자 소송으로 유명한 것처럼 보이는 한 변호사를 선임했다. SNS에서 상간 소송을 전문적으로 다룬다며 공격적으로 홍보를 하는 변호사였다. 화려한 이력을 앞세운 그들의 등장이 위협적이지 않았느냐 묻는다면, 오히려 그 반대였다.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차분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원래의 계획을 밀고 나갔다.
소송이라는 전쟁터에서 정보는 곧 무기다. 하지만 우리는 가지고 있는 무기를 처음에 다 꺼내 보이지 않았다. 법원에 소장을 제출하며 우리가 확보한 증거의 극히 일부, 딱 절반의 진실만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상대방을 골탕 먹이려는 심술이 아니다. 이 소송판에서 흔히 통용되는, 아주 고전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리트머스 시험지다. 상대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만을 찾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진정으로 사죄할 마음이 있었다면 우리가 제시한 증거의 양과 상관없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늘 ‘안 걸릴 수도 있다’는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든다.
얼마 후 도착한 상대방(피고)의 답변서는 우리의 예상 시나리오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원고의 배우자와는 딱 한 번 만났을 뿐입니다. 그 외에는 만난 적도, 연락한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제출한 증거가 가진 것의 전부라고 판단한 듯했다. 화려한 광고를 하던 그 변호사의 조언이었는지, 피고 본인의 얄팍한 계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증거가 없으면 사실도 없다'고 믿는 법 기술자의 오만에 빠져, 우리가 쳐놓은 경계선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 그 답변서에는 반성이 아닌, 상황을 모면하려는 계산만이 가득했다.
답변서를 확인한 후, 우리는 침묵을 깨고 아껴두었던 나머지 증거들을 법원에 제출했다. 그들이 "만난 적 없다"고 잡아떼던 날짜의 기록들, "연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던 시기의 대화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는 준비서면을 통해 감정을 억누르고 차갑게 사실을 적시했다. "피고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것에 더해,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법원과 원고를 기만하며 거짓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반성 없는 태도야말로 위자료 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참작되어야 할 요소입니다."
상대방은 아마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소송을 많이 해봤다는 전문가를 믿었고, 증거가 부족해 보이니 적당히 둘러대면 넘어갈 수 있을 거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적당히'가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사실 증거를 나누어 내며 상대의 거짓말을 유도하는 건, 이 바닥에서는 너무나 뻔하고 낡은 트릭이다. 그런데도 소위 '선수'라는 변호사가 이 뻔한 수에 걸려들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요령으로 진실을 덮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허술한 도박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그들은 안 걸릴 줄 알고 던진 거짓말 때문에, 단순한 불법행위자를 넘어 '법정을 기만하고 반성조차 하지 않는 뻔뻔한 가해자'가 되었다.
소송을 진행하며 다시금 깨닫는다. 법정은 증거로 싸우는 곳이지만, 판결을 완성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태도다. 상대방이 화려한 변호사를 찾는 대신 자신의 양심을 먼저 들여다봤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우리가 놓은 덫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뛰어난 변호의 기술이 아니라, 투박하더라도 솔직한 인정이었다.
어떤 화려한 전략도, 유명한 변호사의 말솜씨도 진실을 덮을 수는 없다. 가장 완벽하고 강력한 방어는 언제나 '솔직함'과 '진실된 사죄'뿐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