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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의 불공평

아픈 손가락과 남겨진 형제들

by 평택변호사 오광균
내가 평생 피땀 흘려 번 돈인데,
그 돈을 가져가겠다고 내 자식들이 서로 멱살을 잡는 것만큼
비극이 또 있을까.


수많은 상속 분쟁을 지켜본 법조인들이나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자산가들이 흔히 하는 탄식이다. 부모의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혹은 삼우제가 지나자마자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형제들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드라마 속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상속 분쟁의 표면적인 이유는 언제나 '돈'이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갈등의 뿌리는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에 닿아 있다. 바로 '불공평함'에 대한 분노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공평함이 부모의 '사랑'에서 기인한다는 역설이다.


옛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유독 더 아리고 쓰라린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집안마다 하나씩 꼭 있다는 그 '아픈 손가락'이다. 사업에 실패했거나, 몸이 약하거나, 혹은 변변한 직장 없이 방황하는 자식. 부모의 눈에 그 자식은 언제나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위태롭다.


비극은 부모의 애틋한 마음이 현실적인 경제 지원으로 이어질 때 시작된다. 부모는 안쓰러운 마음에, 혹은 언젠가는 사람 구실을 하겠지 하는 기대감에 그 아픈 손가락에게 끊임없이 지원을 쏟아붓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그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자립심을 키워주기보다는 의존성만 높이고, 부모의 노후 자금은 서서히 바닥을 드러낸다.


반면, 소위 '잘난 자식들' 혹은 '효자'라고 불리는 다른 형제들은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성실하게 제 몫을 다하며 살아왔다. 그들은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효도라 생각하며 묵묵히 자신의 삶을 꾸렸다. 부모가 아픈 손가락을 챙길 때도 "오죽하면 그러시겠나" 하며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상속'이 현실이 되는 순간, 억눌러왔던 뇌관은 폭발한다.


성실하게 살아온 자식들은 부모가 남긴 재산이 거의 없거나, 이미 생전에 그 아픈 손가락에게 대부분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게 이 상황은 명백한 '역차별'이다. 부모의 재산을 지키고 불린 것은 자신들의 묵묵한 인내였는데, 정작 그 과실은 문제를 일으킨 형제가 독식한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너만 다 가져갔냐"는 형제들의 책망에, 아픈 손가락은 오히려 뻔뻔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하기 일쑤다. "부모님이 주셔서 받은 것뿐이다"라거나 "나는 힘들게 살지 않느냐"는 항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


결국 남은 자식들의 분노는 형제를 넘어 돌아가신 부모를 향하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는 왜 그렇게 쟤만 감싸고 도셨나요?" "우리가 열심히 산 건 바보 같은 짓이었나요?"


부모는 사랑으로 베풀었으나, 자식들에게 남은 것은 증오뿐이다. 아픈 손가락을 감싸기 위해 부모가 쏟은 돈과 정성은, 남은 형제들에게 "너희는 덜 사랑했다" 혹은 "너희의 노력은 인정받지 못했다"는 잔인한 메시지로 변질되어 전달된다.


가장 슬픈 비극은 이것이다. 부모가 평생을 바쳐 일군 부(富)가 자식들의 우애를 다지는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형제라는 천륜을 끊어내는 칼날이 되어버린다는 것. 아픈 손가락을 너무 오래, 너무 깊게 감싸 안았던 그 사랑이, 결국은 남은 자식들 모두를 상처 입히는 불공평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사랑은 '균형'에서 온다: 부모가 해야 할 일


그렇다면 비극을 막기 위해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냉정한 사랑'이 필요하다.



첫째, 지원에는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한다.


아픈 손가락에 대한 지원이 자립을 돕는 마중물이 아니라, 그저 탕진될 소비재라면 과감히 멈춰야 한다. 끊임없는 금전적 지원은 자식을 돕는 게 아니라, 자식의 무능력을 고착화시키는 독이 될 뿐이다. 부모가 영원히 곁에 있어 줄 수 없음을 자식에게 인지시키고, 스스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둘째, '침묵하는 자식들'을 기억해야 한다.


말썽 피우지 않고 제 몫을 다하는 자식들이라고 해서 부모의 사랑이나 인정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배려다. 아픈 형제에게 쏠리는 부모의 관심을 이해하려 애쓰는 그들의 인내심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생전에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최소한의 공평함을 지켜주어야 한다.



셋째, '투명한 상속 설계'가 필요하다.


막연히 "형제끼리 알아서 잘 나누겠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특히 아픈 손가락이 염려된다면, 단순히 현금을 쥐여주는 대신 '유언대용신탁'과 같은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재산을 한 번에 탕진하지 않고 매달 생활비조로 받게 하거나, 다른 형제들과의 분쟁 소지를 미리 차단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생전 증여가 있었다면 이를 명확히 기록하여 사후에 다른 자식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도록 정리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돈은 사라지지만 상처는 남는다. 부모가 남겨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은 빌딩이나 통장의 잔고가 아니다. 부모가 떠난 자리에서도 형제들이 서로를 챙기고 의지할 수 있는 '우애'를 남겨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생의 마지막에 완성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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