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보호의 그늘에 가려진 피해자들
법무부가 민사집행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2026년 2월부터 압류가 금지되는 최저생계비를 현행 월 185만 원에서 월 250만 원으로 대폭 상향한다. 물가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 등을 고려하여 채무자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물론 빚 독촉에 시달려 최소한의 식비조차 없는 채무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하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로서, 이번 인상 폭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통계로 살펴보면 이 금액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명확해진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26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은 2,564,238원(세전)이다. 그런데 압류가 금지되는 250만 원은 '세후' 실수령액 기준이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3,400만 원에 달한다.
즉, 빚을 진 채무자가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심지어 대한민국 딱 중간 소득인 1인 가구(중위소득자)보다 더 많은 현금을 '최저생계비'라는 명목으로 보장받는 기이한 역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죽지 않고 사는' 수준을 넘어 여유 있는 경제 활동이 가능한 금액이다.
우리 법제에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채무자를 위해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제도가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빚을 갚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법원의 판단을 받아 채무를 조정받거나 면책받는 것이 정공법이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개정은 법원의 엄격한 심사(회생/파산)를 거치지 않고도, 단순히 통장에 꽂히는 250만 원에 대해 채권자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강력한 방패'를 쥐어주는 셈이다. 이는 성실하게 빚을 갚거나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다른 채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이어진다.
가장 심각한 맹점은 개인회생이나 파산 절차를 밟더라도 면책되지 않는, 즉 끝까지 갚아야만 하는 '비면책 채권'에서 드러난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의 생존과 직결된 양육비와 고의적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채무다.
애초에 법이 이러한 채무를 회생·파산 절차에서도 탕감해주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채무자의 재기보다 피해자의 보호와 사회적 정의가 우선되어야 하는, 성질상 절대 면책시켜서는 안 되는 빚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상향 조치는 세후 250만 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에게 이러한 비면책채권에 대해서조차 사실상의 '면죄부'를 쥐어준 셈이다. 법원조차 정의의 관점에서 면책을 불허하는 악성 채무를, 정부의 시행령 하나가 '압류 금지'라는 명목으로 무력화시키는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양육비의 경우, 제도가 개선되어 미지급자에게 운전면허 정지나 출국 금지 같은 행정적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이것이 당장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현금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결국 양육자가 현실적으로 밀린 양육비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채무자의 통장을 압류하는 강제집행이 필수적인데, 채무자가 월 250만 원을 벌면서 "법대로 하라"며 버틴다면 양육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채무자 보호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채권자, 특히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양육비 채권자나 범죄 피해자의 권리까지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일괄적으로 250만 원까지 압류를 막을 것이 아니라, 채권의 성격에 따라 압류 금지 범위를 달리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적어도 양육비나 고의 불법행위 채권에 대해서는 압류 금지 하한선을 낮추거나, 법원의 허가를 통해 압류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더 적극적으로 둬야 한다.
연봉 3,400만 원을 버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단돈 10만 원도 주지 않아도 되는 세상. 이번 개정이 '약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또 다른 약자를 울리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