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그럼 저는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제가 지금 한 시간 넘게 방법을 방법을 말씀드렸는데..."
3건 정도 상담을 하면 1~2건 정도는 저런 대화가 오고 간다. 나는 전문분야가 민사와 이혼이어서 상담을 꽤 오래 하는 편인데, 열심히 설명을 드려도 '방법이 없냐'라고 하면 허탈해진다. 왜 비싼 돈을 주고 변호사와 상담을 하면서 변호사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듣지 않는 것일까.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람이 찾아왔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소송을 하는 것보다 우선 지급명령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 지급명령 신청을 할 때 상대방의 주민등록번호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면 나중에 강제집행을 할 때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보통은 주민등록번호를 모르면 민사소송으로, 알면 지급명령 신청으로 하는 것을 권해드린다.
이번에 온 손님은 돈을 빌려간 친구의 주민등록번호까지는 모르고, 구체적인 주소도 모르고, 이름과 휴대전화 번호만 아는 상황이었다. 이 경우에는 민사소송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경우라면 지급명령 신청으로는 어렵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후, 사실조회를 해서 상대방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알아내면 됩니다."라고 하였더니,
"변호사님, 그러면 저는 아무것도 못하는 것인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왔다.
한 번은 부부가 찾아와서 부동산 계약과 관련한 분쟁을 상담하였다. 1시간 넘게 상담을 하면서, 만약 상대방이 A로 주장하면 B로 맞서면 되고, C로 주장하면 D로 맞서면 됩니다.라고 하자, 남편분이 "그럼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요?"라고 하였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한 시간 넘게 방법을 말씀드렸는데, 아무것도 못하냐고 물으시면 전 뭐라고 해야 합니까."라고 하자, 옆에 있던 아내 분이 빵 터져서 웃고 끝낸 적이 있다.
그 손님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3번 상담을 하면 1~2건은 같은 상황이 생긴다. 왜 많은 사람들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 그 대답이 무엇인지에 상관없이 항상 '아무것도 못 한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일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을 검색하거나 이리저리 물어봐도 방법이 없자, 변호사를 찾아와서도 '방법이 없다'라는 대답을 듣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변호사님 저는 억울한데 방법이 없어서 더 억울합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뿐, 변호사가 말하는 방법은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인터넷을 검색한다고 해서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어떤 것을 검색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전원에 집을 짓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인터넷 녹색창에 '집짓기'를 검색해도 어떠한 토지를 사야 하며, 설계는 어디에 맡겨야 하는지, 어느 업체에서 어디까지 해 주는 것인지 등 실제 필요한 정보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냥 광고만 많이 나올 뿐이다. 그런데 건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왜 저런 검색어를 치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법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 인터넷으로도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본인이 모른다고 해서 변호사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담을 받을 필요도 없다.
변호사에게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는 이유는, 자신보다 법률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말을 듣기 위해 돈을 내고서 그 말을 듣지 않으면 헛돈을 쓴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방법이 없는 경우는, 대개 우리 법과 제도에 허점이 있는 경우이거나, 손님이 잘못한 경우이다. 그런데 우리 법이 잘못된 경우도 많지만, 손님이 잘못한 경우도 많다.
후자의 경우, 특히 음주운전 상담을 할 때 많이 겪는 일이다.
"변호사님, 얼마 전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렸는데, 이미 예전에도 여러 번 걸린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하는 데, 억울합니다."
"네, 어느 부분이 억울할까요?"
"저는 그냥 술을 마시고 집이 근처니까 잠깐 운전을 한 것인데, 그걸로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하니, 억울합니다."
"아니, 음주 운전을 했다면서요. 그럼 감옥에 갈 수도 있는 것이죠. 딱히 억울해 보이지는 않는데요."
"음주운전을 했다고 감옥까지 간다는 것은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지 말았어야죠. 변호사를 선임한다고 해서, 술을 마신 게 안 마시는 게 되는 것도 아니고, 운전을 한 게 안 한 게 되는 것도 아닌데,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처자식이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인데, 감옥에 가게 되면 생계가 막막합니다."
"본인이 감옥에 가면 가족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면서 음주운전은 왜 하셨나요? 변호사 선임할 돈으로 가족들 주시고 차를 파세요. 어차피 앞으로 운전도 못하는데"
"그럼, 방법이 없나요?"
위와 같은 대화가 내가 형사사건을 거의 수임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 "방법이 없나요?"라는 질문은 이해가 간다. 굳이 방법을 물어보면 "가서 비세요. 반성문도 좀 쓰고"라고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변호사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소송밖에 방법이 없는 것일까.
소송이 만사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사실 송사가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돈도 돈이지만 일단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고 오래 걸린다. 그런데 변호사가 주로 하는 일이 소송이다. 소송을 통하지 않고 상대방과 합의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변호사를 찾아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본인이 피고이면서 소송 외에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다. 피고 입장에서 소송을 하기 싫으면 원고의 청구를 그대로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소송을 해야 한다. A와 B,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A도 싫고 B고 싫으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상담 내용을 녹음해 가는 때가 종종 있다. 상담 내용을 녹음하면 변호사가 싫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의뢰인이 사건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이 사건은 일하기 좀 편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녹음을 하겠다고 하면 흔쾌히 하시라고 하고, 휴대전화로 녹음 중에 전화가 오면 말을 멈추고 다시 녹음하시라고 한다. 어차피 거짓말로 상담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담비까지 받고 상담을 하는 것이라 녹음을 하지 말라고 할 이유가 없다.
그래, 차라리 녹음을 해 가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녹음을 하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