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예약도 없이 불쑥 손님이 찾아왔다.
우리 직원이 말했다.
"저희는 예약제입니다."
그러나 손님은 냉정했다.
"전세금 반환 문제인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굳이 내 방까지 소리가 들려와서 내가 개입했다.
"상담비는 유료인데 괜찮으신가요?"
그러나, 손님은 여전히 냉정했다.
"변호사님, 전세금 반환 문제인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나는 다시 한 번 말했다.
"상담비는 유료인데 상담을 받으시겠어요?"
그러나 손님은 여전히 냉정했다.
"변호사님, 정말 도와주실 수 없는 건가요?"
도와달라는 말은 공짜로 해 달라는 말인 것 같았다.
"안됩니다. 상담비는 유료입니다."
결국 냉정한 손님은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법원에서 길을 건너 한 2~3분 쯤 걸어가서 나오는 건물 5층에 있는 우리 사무실에까지 오려면, 수많은 '무료 법률상담'이라고 붙어 있는 사무실을 지나가야한다. 그 수많은 공짜들을 지나 우리 사무실 입구에 도착하면 '법률상담은 유료입니다'라는 포스터가 기다리고 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면 직원이 있는 데스크까지 '법률상담은 유료입니다'라고 쓰인 포스터 3개를 더 보아야한다.
공짜로 해 주겠다는 데가 널려 있는데, 굳이 '유료'라고 덕지덕지 붙어 있는 우리 사무실에 들어와 공짜로 해 달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 번은 나이가 좀 있는 정형외과 의사가 와서 한 시간이 넘게 상담을 하더니 상담비를 내지 않고 냅다 도망친 적이 있다. 나는 병원에 가서 항상 돈을 내고 진료를 받았는데 참 억울했다.
그나마 상담을 공짜로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애교로 봐 줄 수도 있겠다. 소송을 공짜로 해 달라고 하는 사람도 꽤 많다.
공짜 소송이라니!!
공짜를 요구하는 사람들은 노숙자도 아니요, 생활 형편이 정말 어려운 사람도 아니다. 그냥 돈을 주기 싫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부족한 것은 많으나 그래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변호사 보수 등 소송비용을 지원해 주는 제도도 있고, 법률구조공단에서 소송을 맡아 주기도 한다. 지원 요건이 엄청 까다롭지도 않다.
한번은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알아보라고 안내했더니, 갔다가 도로 와서는 너무 요구하는 서류들이 많다고 하면서, 나한테 공짜로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서류를 떼기 귀찮으면 소송을 안 하면 되는 것이지, 왜 남의 사업장에 와서 공짜로 해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공짜로 상담을 하는 곳이 어떻게 운영하는 지는 모르겠다. 정상적인 상담을 할리는 없다. 기존 사건으로도 바빠서 매일 야근을 하는데 나한테 사건을 맡길지 말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공짜로 시간을 쓸 여유는 없다. 그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엄청 사건이 없는 곳일 것이다.
공짜를 요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의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하였는데 상대도 돈을 주지 않겠다면 그 대신 뭔가를 해 줘야 형평에 맞는게 아닌가. 우리 사무실 형광등도 갈아야하고, 청소도 좀 구석구석 못한 데가 많은데, 그거라도 시키고 상담을 할까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