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아내)은 굉장히 여린 사람이었다.
상담 중 간간히 욕설을 하기도 하고 남편을 칼로 위협해 자백을 받아내었지만, 처음 보는 변호사 앞에서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사람이었다.
증거는 너무도 명백했다. 소위 빼박캔트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남편이 자백한 녹음뿐만 아니라 상간녀와 대면을 하여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고, 남편으로부터 통화 녹취도 받아내었다.
통화 녹취는 남편과 상간녀 사이의 대화였는데, 두 번 듣기도 힘들었다. 새벽녘의 통화였는데 서로 신음 소리를 내고 욕을 하는 내용이었다. 그냥 더러웠다.
나는 의뢰인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그냥 이혼 하시죠. 다 알면서 어떻게 같이 살아요."
그러나 의뢰인은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상황이면 위자료와 재산분할금을 합해서 6~7,000만 원은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주거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고, 어차피 회사 다니시니까 혼자 생활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죠."
의뢰인은 끝내 이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변호사님이 보시기에는 참 한심해 보이겠고, 저도 이혼을 해야 맞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의뢰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직 그 사람에게 미련이 있어요."
나는 더 이상 강요는 하지 않겠다면서 상간녀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했다.
인적사항은 쉽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주소가 불분명하여 송달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애초에 이런 사람은 허위로 전입신고를 해 놓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찌저찌해서 송달을 보내고 첫 변론기일이 지정되었다.
판사 : 피고는 부정행위 사실을 인정하나요?
피고 : 아니요.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성폭행을 당한 거예요.
어이가 없었다.
판사 : 원고대리인 한 번 말씀해보시죠.
나 : 저희가 제출한 증거는 전화 통화를 녹취한 겁니다. 전화 통화로 어떻게 강간을 하나요?
방청석이 술렁였다. 상황이 너무 웃겼다.
이후로 재판을 세 번을 거쳤는데, 상간녀인 피고는 계속 인정을 하지 않다가 결국에는 모두 인정한다면서 원고가 청구한대로 위자료 2,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며칠 뒤 실제로 2,000만 원이 입금되었다.
그렇게 사건은 끝난 줄 알았지만...
그 2,000만 원은 남편이 준 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