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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변호사 오광균 Mar 25. 2022

60년대에 무슨 항공사진을 찍어!

한 70대 쯤 보이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풍채가 있는 노신사 한 분과 그보다는 조금 어려보이는 60대의 마른 체구의 남성분, 또 그 중간 쯤 되는 남성분, 이렇게 세 사람이 찾아왔다.


노신사는 알아서 상석에 앉아서 나에게 명함을 건넸다.



OO그룹

회장  O O O



회장님이셨다. 이때부터 사짜의 냄새가 나긴 했다. 

내가 변호사로서 권위를 내세운 적은 별로 없지만 사실 의뢰인들이 알아서 상석에 앉는 경우는 별로 없다. 상석은 대개 어린 아이들 데리고 왔을 때 애들이 앉고 평소엔 비워놓는다. 원래 그런 자리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우리 회사가 소송이 많아. 그래서 오 변호사님이 이번에 잘 해 주시면 또 다른 것도 맡길 생각이야."


그렇게 말하고서 실제로 소송을 많이 맡긴 사람은 없다. 회장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내가 쪼끄만 땅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그냥 놀리는 땅이라 신경도 안 쓰는데, 억울한 일이 생겼지 뭐야.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억울해서 소송을 해야겠어."


신경 안 쓰는 땅이면 그냥 두면 되지 왜 소송을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을 계속 들어봤다.


"아니 시에서 이번에 땅을 수용하겠다는데 자기들이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도랑을 파고서 그걸 도랑이라고 감정을 했지 뭐야."


"원래 지목은 뭐였는데요?"


"원래는 답이었지. 그럼 답으로 감정해야하는 게 아닌가?"


"네, 원래 답이었으면 답으로 해야죠."


"그래서 항의를 했더니 시에서 공문이 왔어. 근데 무슨 천구백육십 몇 년? 그 때 항공사진에도 도랑이라는 거야. 아니 무슨 육이오 사변 끝나고 얼마나 됐다고 항공사진이야. 그짓말도 참. 한 번 봐 주고, 나는 얼굴이나 보려고 왔으니 자세한 건 실무자 하고 얘기하시게. 난 잘 모르니까."


회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시고 자리를 떴다. 나는 실무자로 지목된 60대의 남성으로부터 명함과 서류를 받고 검토해 보겠다고 하였다.


시에서 보낸 공문을 보니 과연 회장님이 소유권을 취득하기 전인 1968년에 촬영한 항공사진에도 도랑으로 되어 있으니, 해당 토지는 답이 아니라 '구거', 즉 도랑으로 감정을 하는 것이 맞다는 회신이었다.


나는 국토지리정보원 홈페이지에서 60년대 항공 사진과 최근의 위성사진을 다운받았다. 회장님은 잘 모르나본데, 항공사진은 40년대의 것부터 있다. 일제가 조선을 그냥 수탈했을까.


60년대 항공사진과 최근의 사진을 포토샵으로해서 투명도를 조정해서 겹쳐보았다. 역시 도랑의 위치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현재의 도랑이 60년대에도 도랑이었던 것이다.


나는 실무자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제가 항공사진 확인해 봤는데, 거기 도랑 맞는데요? 왜 거짓말 하셨어요?"


실무자는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 그럼 소송을 못 하는 건가요?"


"소송을 하겠다면 해 드리겠는데, 당연히 패소합니다. 굳이 뭐 회장님이 하시겠다면 하세요. 근데 패소라 성공보수는 못 받으니 착수금은 좀 많이 받아야겠습니다."


실무자는 회장님께 보고하고 알려드리겠다고 하였고, 이후로 연락은 없었다.


결국 국토지리정보원에서 항공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변호사에게 맡겼겠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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