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하면 무조건 위자료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혼 문제를 상담하러 온 손님이 왔다.
“사실 제가 얼마 전에 다른 남자를 만난 것을 남편에게 들켜서 이혼을 해야 하는데, 위자료는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요.”
법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흔히 듣는 질문이다.
이혼을 하면 위자료를 받는다는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혼 사건에서 위자료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이 정신적 손해배상으로 지급하는 돈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이라고 보면 된다.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지, 지급받아야 하는지의 문제는 성별의 문제도 아니고, 재산이 누구의 명의로 되어 있는지의 문제도 아닌, 순수하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주로 누구에게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혼을 하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고, 배우자의 외도와 같이 결정적인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이런저런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가, 도저히 더 이상 같이 살기 어려워서 이혼을 결심하는 때가 많다. 이 경우,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는 때도 많겠지만, 사실 대개는 그저 서로 ‘안 맞아서’ 이혼하는 때가 많다. 그래서 배우자의 이런저런 흠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그 흠이 ‘불법’이냐, 혹은 '위자료를 지급할 정도로 중대한 사유냐'라고 따져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나는 일 년이면 수 십 건의 이혼 사건을 처리하지만, 위자료를 받거나 지급할만한 사건보다 위자료를 기대할 수 없는 사건이 더 많은 것 같다.
재산이 아주 적은 것이 아니라면, 이혼 소송에서 위자료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도는 그리 높지도 않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친권자 및 양육자가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의 장래도 문제이지만, 어쨌든 이혼 후에는 결국 둘 중 하나는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고, 나머지 하나는 혼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제일 많이 주는 문제다.
그다음은 재산분할이다. 혼인 기간이 아주 짧거나 서로 모은 재산이 너무 적어서 재산분할이 별로 의미 없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위자료로 1,000~2,000만 원을 받는 것보다, 재산분할로 10~20%를 더 받거나 덜 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흔히 당사자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이 잘못했다’라는 판결을 받고 싶다고들 하는데, ‘상대방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위자료도 주겠다고 하면, 재산분할에서 과감하게 양보할 수 있느냐’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양보할 수 없다’고 한다. 결국,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정작 ‘돈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혼 재판에 들어가는 때가 많다.
이혼 소송에서 판결 이유야 어찌되었건, 결과는 돈의 문제다. 위자료든 재산분할금이든 결국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해서 계산한 후, '누가 누구에게 어떤 명목으로 얼마를 지급하라'는 내용의 주문을 내는 것이 결론인데, 돈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면 많은 돈과 시간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소송을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위자료는 그 '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 때가 많다.
어찌 되었건, 일부 사람들이 이혼을 하려면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위자료는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위자료 판결이 나오는 사건을 보면, 통계는 확인하지 않았지만 남자가 위자료를 지급하는 경우나, 여자가 위자료를 지급하는 경우는 거의 비슷한 빈도로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잘못된 생각이 생기게 된 원인은 언론과 TV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는 기자나 작가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들도 결국 어디에선가 듣고 '잘못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https://news.v.daum.net/v/20200730030634823
위의 기사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전 부인 매켄지 스콧이 ‘위자료’로 아마존 주식의 25%(약 40조 원)를 받아서, 이 중 약 2조 원 정도를 기부하였다는 내용이다. 중앙일보에도 비슷한 기사가 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36448
위 기사를 보자마자 기사가 잘못되었다고 직감하였는데, 아무리 제프 베이조스가 세계적인 부자라고 하더라도 이혼 ‘위자료’만으로 약 40조를 줄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 뉴스와 달리 BBC 뉴스에서는 40조가 위자료가 아닌 ‘합의금’이라고 하였다.
https://www.bbc.com/korean/47823306
국내 언론보도와 달리 실제로는 위 BBC 뉴스처럼 ‘위자료’가 아니라 ‘합의금’이었을 것이다.
'위자료나 합의금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위자료와 합의금은 전혀 다르다.
위자료는 말 그대로 ‘위자’를 위한 돈이므로 일종의 손해배상금이고, 합의금은 ‘합의’ 즉 계약에 따라 지급하는 돈이다.
내가 소유하던 아파트를 1억 원에 팔면서 매수인에게 받는 돈은 위자료가 아니라 받는 매매대금이다. ‘계약’은 '서로 다른 당사자 사이의 의사의 일치’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다른 말로는 ‘합의’라고도 할 수 있고(실제로 중국어로는 ‘합동’이라고 부른다), 계약에 따른 매매대금은 ‘합의금’이라고도 부를 수는 있을 것이다.
김밥천국에서 3,000원을 주고 야채김밥을 살 때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통 김밥천국이 작성한 메뉴판(청약의 유인)을 보고, 메뉴를 정해 주문하고(청약), 사장님이 주문을 받으면(승낙), 돈을 지불하고(급부), 김밥을 받는다(반대급부). 전형적인 계약의 모습이다.
만약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받으면서, ‘사장님이 김밥을 만드느라 정신적인 고통을 받으셨을 테니 3,000원을 받으세요’라며 돈을 건네었다면, 김밥 값은 따로 주겠다는 의도로 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를 얼마 주고받기로 하였다면, 이는 이혼에 따른 정신적 고통에 따른 금액이지, 재산분할은 따로 계산해야 한다.
위자료와 합의금을 혼동하는 습관은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A와 B가 이혼을 하면서 A가 B에게 위자료를 지급하기로 합의를 하였다면, A와 B사이에서는 재산분할에 관하여는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혼이 성립한 이후라도 2년 내에는 재산분할 청구를 할 수 있다.
만약 A가 B와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든 재산분할이든, 혼인관계를 청산할 의도로 합의를 하면서 ‘B에게 위자료로 얼마를 지급한다’라고 하였을 때, 후에 B가 재산분할 청구를 한다면, 합의 당시에 ‘위자료’가 실제로는 ‘위자료’가 아니라 ‘재산분할금’ 또는 ‘위자료 및 재산분할금'이었다는 점은 A가 증명하여야 한다.
실제로도 위와 같은 일은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이혼 상담을 하면서 ‘이 사건은 위자료를 청구하기 어렵습니다’라고 답변을 하면, ‘그럼 저는 빈손으로 나와야 하나요’라는 반응이 나올 때가 많다. 이혼을 하며 주고받는 돈을 모두 ‘위자료’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처음에 말했던 사례와 같이 자신의 외도로 이혼하게 되었으면 상대방에게 다른 특별한 잘못이 없다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오히려 위자료를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볼 때도 많다.
생각해보면, ‘위자료’라는 말이 어렵다. ‘위자’ 또는 ‘위자 한다’라는 말은 변호사인 나도 잘 쓰지 않는다. 차라리 ‘위자료’라는 말 대신 ‘손해배상금’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