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보니 학교에서 홍길동을 가지고 모의재판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좋은 소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빼도 박도 못하는 유죄인 데다가 '개전의 정'조차 없어서 높은 형량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변호사 입장에서는 매우 꺼려지는 사건이다.
홍길동 측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할 것 같다. 인터넷 포털에서도 홍길동의 변호 논리를 물어보는 질문이 꽤 많이 검색되는데, 상당히 위험한 답변이 많이 보인다.
가령, '홍길동은 탐관오리로부터 훔친 재물을 의로운 일에 사용하였다'는 논리다. 탐관오리인지 아닌지, 누군가에게 재물을 주는 일이 의로운 일인지 아닌지를 왜 홍길동이 판단할 수 있는지에 근거가 필요한 주장이다. 가령 탐관오리로 지목된 공무원 중에는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홍길동으로부터 재물을 받은 자 중에는 흉악범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홍길동을 소재로 한 모의재판은 대개 초등학생 내지 중학생 정도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법 이론을 가지고 따지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해봐도 잘 나오지 않는 대응논리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홍길동의 상습 절도 내지 강도 행위 자체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이 부분을 다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양형에 관하여 참작할 점을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선한 의도를 가졌다'라는 논리로 범죄행위 자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변론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범죄 사실에 대하여 정당행위 등을 이유로, 소위 '위법성 조각사유'를 다투는 것은 별 소득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가입되어 있고, 위 협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 위 협약 제31조 제1항에서는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를 향유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왕은 스스로를 외교관으로 임명할 수도 있는 것이므로, 홍길동은 위 조항에 따라 형사소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홍길동의 변호인은 형사소송법 제327조에 따라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다만, 이때 검사는 율도국은 국가로 인정할 수 없는 임의조직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공소시효를 다투는 것은 모의재판에서의 '암묵적 전제'를 건드리는 치사한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어쨌든 홍길동에 관련한 소설이나 주장 등으로 볼 때, 그는 조선 초기 내지는 중기 정도에 활동하였던 인물로 보인다.
따라서 범죄행위가 있었던 시점 역시 조선 초기 내지는 중기 정도가 될 것이므로, 재판을 할 현재 시점에서는 이미 공소시효가 도과되었을 것이다.
홍길동의 변호인은 이 점을 근거로 형사소송법 제326조에 따라 면소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때 검사는 홍길동이 율도국에 있었으므로 시효가 정지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검사가 그와 같은 주장을 한다면 율도국을 마치 국가나 그 유사의 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이 된다는 모순이 있다,
형법 제1조 제1항에서는 "범죄의 성립과 처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에서는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경한 때에는 신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검사가 현재의 형법으로 기소를 한 것이라면, 행위 시법 주의를 위반한 위법이 있다고 다툴 수 있다.
홍길동이 활동하던 시점에 적용되는 법은 경국대전 또는 대명률이므로, 검사는 경국대전과 대명률을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 현행 형법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검사가 현행 형법을 적용하여 기소하기 위해서는 현행 형법이 홍길동의 범행 당시 적용되었던 경국대전이나 대명률의 형보다 경하다는 것을 증명하여야 한다. 검사가 홍길동의 범죄행위에 적용할 수 있는 법률조항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현행 형법을 근거로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다.
홍길동전에 의하면, 홍길동은 결국 체포되어 한양으로 송치되었고, 이때 조선의 왕은 홍길동의 소원대로 병조판서에 제수한다고 하고서, 실제로는 홍길동이 궐에서 나올 때 도부수로 하여금 살해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즉 홍길동은 이미 재판을 한 번 받은 것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하여 이미 확정된 판결이 있는 것이므로, 홍길동의 변호인은 검사가 공소제기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만약,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의 모의재판에서 위와 같이 주장한다면, 선생님의 의도와 다르게 진행될 수밖에 없어 선생님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 한다.
홍길동의 변호인이라면 당연히 홍길동전을 여러 번 정독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관계의 파악은 변호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기 때문이다. 검사보다 사실관계를 더 자세히 알아야만 검사가 놓친 부분을 지적하고, 적절하게 항변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모의재판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어떠한 주장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홍길동전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