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이방인

- 잘 부탁해

by 소소한 연필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극 N성향의 사람과 만났을 때,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지기도 한다.


태어나 처음 가보는 동네

살아온 일생을 통틀어 내 선택지에는 없었던 곳

그런 곳으로 떠나기에 앞서 내 머릿속은 온갖 상상에 상상을 더한 걱정들로 가득했다.

그와 동시에 오만가지 경우의 수를 계산하며

나를 기다리고있을 갖은 우여곡절에 대한 만반의 대비와 굳은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포근하게 맞이해주는 쨍쨍한 봄날씨를 기대했건만,

13시간이 걸려 도착한 이곳의 바람은 차디찬 겨울 바람이었다.


이 동네가 바다와 가까웠던가?

바람이 머금은 찬기와 습기는 내 고향의 바람과는 너무 달랐다.


차디찬 바람탓인지 이국땅이 주는 낯설음 때문인지

잔뜩 어깨를 움추린 채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우버택시를 잡았다.


10만원이 넘는 요금이 결제되고

5분이 지났을까, 어플에서 알려준 번호판을 달고있는 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최대한 생글생글

사람좋은 미소를 유지하자-'


너무 허허실실해 정말 사람이 좋아보였던걸까

우버아저씨는 줄줄이 세워진 5개의 캐리어를 보더니

자기가 최근에 허리를 다쳤다며 나더러 들어달란다.


허 참, 내가 이러려고 택시비로 10만원을 넘게 결제했겠냐고-

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공항에서부터 호구를 잡히는구나 싶었다.


차를 타자 운전대 옆에 보란듯이 목 보호대가 풀어져있었지만,

이마저도 다 계산된 소품 아니겠냐며 의심하는 나는 어김없이 이 땅이 낯선 이방인이었다.


긴장을 풀지 않은 채로 택시에 앉아서 간지 3분은 되었을까,

허리를 다쳤다던 택시 아저씨는 별안간 나에게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여기는 처음오는 건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오느라 힘들지는 않았는지,


내가 한마디를 대답하면,

이분은 열마디 이상의 부연설명을 가지고 왔다.


이 동네의 역사부터,

어디가 안전하고 어디가 안전하지 않은지,

그는 어디에서 왔고, 그의 고향은 현재 전쟁중이라 이곳으로 가족을 데리고 피난을 왔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이상하게 오늘은 바람이 심상치 않게 불긴하지만,

이 동네는 벚꽃이 유명하고 게다가 또 이번주부터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하고 있어

너는 굉장히 lucky하다는 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있자니 눈 앞에는 처음보는 지명이 적힌 표지판들이 휙휙 지나가고

옆 차선에는 테닝을 하지 않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동차들이 우리를 추월해 달리고

라디오에서는 어릴적 프렌즈에서 들어봤을법한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Oh, maybe he's no Romeo

But he's my lovin' one-man show


Oh, whoa-oa-oa
Let's hear it for the boy


비행기에서부터, 아니 어쩌면 집을 떠나올때부터

나를 똘똘 감싸고 있던 긴장과 불안은

택시아저씨가 봄내음을 코로 직접 맡아보라며 열어놓은 창문에 날아가고,

계산이라도 한 듯이 차창으로 후루룩 지나가는 벚꽃나무를 보고있자니

잔뜩 움추려있던 어깨가 풀어지면서 그제야 내가 정말 이곳에 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첫 스타트가 좋아- 생각보다 좋은 분인 것 같네.

허리도 정말 다치셨었나봐'


그결에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아까 말해준 그 동네는 왜 안전하지 않은지,

안전한 동네는 렌트가 얼마나 하는지,

여기는 살기에 어떤지,


그리고 어쩌면 사적일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것에 나도 마음이 열렸는지,

당신의 설명을 듣고있자니

이 곳에서의 생활이 걱정은 되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곁들였다


그러자 내가 이전보다 긴장을 풀고 살짝 신나하는게 보였는지

갑자기 택시로 시내 투어를 해주겠단다

추가금은 얼마 안나올거란다

끽해봐야 몇센트 정도..?


반사적으로 오 굿굿 하며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엥..?

뭐지 이... 쎄함은..?

그렇게 다 돌아보고 나를 내려주는데 고작 몇센트라고?


너무 경계를 풀었었나 싶어 다시금 시트에 기대어진 어깨와 허리를 바로 잡고

오 노우노우- 호텔로 바로바로- 를 외치기 시작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택시 아저씨는 나쁘지도 이상하지도 않은 분이었고,

친철하게도 아주 살짝 우회하여 시내에 위치한 명소들을 소개해주고는

추가요금 없이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아마 생각보다 시내까지 길이 막히지 않아

눈가에 긴장과 설렘이 반반씩 섞인 이 이방인에게 자신의 동네를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 뿐이었을지도.


그렇게 나는,

포토맥강과, 백악관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시내 거리들을 지나

내가 살아갈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p.s

이제야 살짝 아쉬운 것이지만,

그때 그 택시 아저씨가 해주는 시내 투어를 그냥 했어야했다.

차가 막히지 않았기 때문에 말마따나 추가요금은 거의 나오지 않았을거고

교통비가 비싼 이곳에서, 면허가 없는 내가 디씨 시내를 휙 돌아볼 수 있는 기회는 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