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 쓰는 게 좋다. 머리 속에 두루뭉술한 무언가가 너무 강렬해서 품고 있지 못할 것 같을 때, 어디엔가 단어 하나씩 풀었다가 신나서 문장으로 흘러나왔다가 이내 문단이 되고 한바탕의 글이 되는 것이, 마치, 작은 지류가 모여 큰 강을 이루는 것 같은 희열감을 준다. 물론 처음부터 희열감에 가득 차는 것은 아니다. 처음 뽑혀나온 실타래는 정확히 그 색이 아니어서, 혹은 그 질감이 아니어서 버려지기를 몇 번을 거듭할 때도 있다. 풀려나온 실마리가 정확히 그것은 아닌데 버리기엔 또 아까워서 고민하며 쥐고 있다가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허공에 흩어져 버리고만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거치고 넘어서 내 생각이 가지고 있던 느낌을 얼추 구현한 글을 만났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생각이 가진 강렬한 에너지를 놓아줘도 되는구나, 하고 비로소 쉬어가는 것이다.
나와 글 사이에는 그 쉼이 있다. 내 생각과 내 글은 정확히 같지 않다. 내 생각이 좀더 빛나 보일 때가 있다. 내 표현이 무딘 것이다. 때로는 우연히 펜이 간 곳이 내 생각을 더 날카롭게 빚어낼 때도 있다. 그러면 내 글을 몇 번씩 되읽으며 내 생각의 논리를 다시금 잡아갈 때도 있다. 생각이 글을 만들고 글이 생각을 매만진다. 둘은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를 견제하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한다. 그렇게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논리도 다듬고 표현도 다듬어 글을 만들어 두면 그 글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 다른 존재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은 나에게서 나오고 나를 위해 만들어지지만, 그것은 이제 나에게서 분리되어 다른 것이 된다. 너를 끌어안으면 너의 피부가 내가 더이상 다가갈 수 없는 경계선이 되어버린다. 어느 순간 나와 글 사이에는 그런 경계선이 생겨버린다. 글이 깔끔할수록, 글이 논리정연하게 다듬어질수록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적절한 표현을 찾으면 그래서, 마구 신나다가도 어느 순간 내 것 같은 느낌이 덜해진다. 내 생각은 솜털 붕붕한 말티즈에서 시작해 곰팡이가 핀 음식으로 갔다가 방안에서 발견했던 거미로 넘어가는데 내 글은 거기에 일관된 솜털 붕붕만 남는다. 경험과 생각은 좀더 다양한 차원의 다양한 곡면을 가지는데, 글을 그렇게 쓰면 산만해지므로 다듬고 다듬어 다이아몬드로 만들어내고는 내 것은 좀더 탁하고 제멋대로의 모양을 가졌는 걸, 한다.
생각을 꺼내 잘 씻고 다듬어 햇볕에 말려둔다.
잘 마른 글은 아름답다. 더이상 내것이 아닌 아름다움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나로부터 분리하는 일이다.
아름다움이 나로부터 왔음을 잠시 기뻐하고
나와 하나될 수 없음에 오래도록 슬퍼한다.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 쓰다보면 표현이 좋아져서 어느 날은 내 것 같을까? 잘 모르겠지만 아닐 것 같다. 그래도 글은 계속 쓴다. 잘 쓰지 못한 글도 예뻐보이는 걸 보면 그냥 내가 고슴도치인 거겠지뭐.
2025.2.2
계속 글을 쓰며 살아가고 싶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