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 이제 누가 악당이지? -후편

영화 <챌린저스> 리뷰 2. 캐릭터

by 사유의 서랍

* 본 리뷰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13년 전으로 가보자. 주니어 US오픈 남자복식에서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아트와 패트릭. 패트릭은 아트를 보고 아트는 트로피를 본다. 타시가 찾아온 아트와 패트릭의 호텔방에서 어릴적 아트의 첫 자위를 이야기 하는 둘. 타시가 둘 중 누가 먼저 끝났냐고 묻는데 패트릭은 아트라고 말하며 웃는다. 자위를 하면서 아트를 보고 있었던 패트릭. 뉴로셀 대회 1차전을 이기고 난 패트릭은 틴더를 보는데, 데이트 상대로 여자들도 있고 남자도 있다. 패트릭이 바이라는 코드. 패트릭은 아트를 연애대상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이때 둘의 관계는 < 화살표의 모양. 아트 '<' 패트릭.


거기에 '패트릭의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실상 홀로 오롯한 타시가 '1'로 등장하면서 셋의 모양은 삼각형이 된다. '<1' 아트가 타시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키스하고, 번호를 얻고 싶어하니 일견 타시가 삼각형의 꼭지점으로 보이지만, 삼각에서 타시는 아트로 향하던 패트릭의 사랑이 가로막히는 네트의 역할이다. 그렇기에 아트는 패트릭이 타시와 자는 걸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자신이 소외되는 문제'라 인식한다. 패트릭이 타시와 자는 것이 아트를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는 패트릭이 타시와 자는 걸 '이야기하지 않는 것'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나온다. 아트는 패트릭의 '자신에게 향한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이제 그 '방향이 감춰져 있기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트가 패트릭의 시그널을 본 후의 표정도 소외감과는 상관없는 표정이다. 소외된 슬픔보다 차라리 '배신감'으로 보인다. 아트는 타시와 아무런 관계가 아닌데다 번호 따기 승부에서도 졌는데, 무슨 자격으로 누구에게 배신감을 느낄까? 아트는 패트릭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그 마음의 방향이 이제 자신을 향하지 않기에 느끼는 게 배신감 혹은 분노로 향하는 게 아닐까? 아트는 승부에 져서 자신을 향하던 마음을 잃었고, 경이로운 여신에게 다가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아트는 12년의 기간동안 이기는(=win=결과를 얻는) 데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아트는 그렇게 모든 것을 얻었나? 12년 후 뉴로셀 대회의 사우나에서 패트릭을 만난 아트가 대뜸 던진 말은 'you have considably more stake here than I do'라는 말이다. 패트릭이 이 대회에 더 많은 것을 걸고 있다는 말이다. 패트릭은 여기서 이겨야 US오픈 예선에 나가보기라도 할 수 있다. 물론 참가비, 상금같은 것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아트는 패트릭과 같은 급이 아니라고 강조하며 자신에게 패트릭이 'matter'가 아니라고 말한다. 아트는 이 대회와 패트릭과의 경기, 모두다 스쳐지나가는 것이고 자신에게는 여기에 걸 만한 것이 없다고 강변하지만, 결국 그들은 같은 대회 같은 장소에서 만났다. 아트에게 패트릭은 너무나 중요(matter)하다는 것이 그날 밤 아트와 타시와의 대화에서 밝혀지는 것을 보면, 아트가 먼저 했던 말도 거짓말이다. 아트에게도 이 대회에 패트릭만큼 '얻어가야'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트가 얻어가야 하는 것은? 아트는 자기자신을 얻어가야 한다. 아트는 타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경주하느라 정작 자기 마음 속에 있는 '타시'외의 것은 모두 어디 가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트는 자신이 오롯이 테니스 게임에 서있지 않는다. 타시가 바라는 아트가 되어 타시가 정한 상대와 싸우고, 타시가 분석한 상대의 단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경기를 한다. 아트는 어쩌면 타시가 되어 게임을 한다. 아트는 '승부에 집착하고' 이기기 위해서 상대가 지는 포인트를 놓치지 않지만 게임 자체에 빠져서 경기를 하지 않는다. 아트의 경기엔 아트의 흥미가 없다. 자신의 코트에서 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게임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는 재미가 없고 그저 지칠 뿐이고, '내가 떠나고 싶을 때'가 아니라 '떠나야 할 때'를 의식한다.



이것은 아트와 타시의 'relationship'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트는 타시와 키스하면서도 키스 때문에 잃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다. 아트에게 타시는 'win', 타시를 'win'하기위해 달려갈 뿐, '왜' 타시를 'win'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텅빈 채로 그저 타시 곁을 맹목적으로 지켜왔다. 패트릭과의 뉴로셀 결승 전날밤, 아트의 질문에 다시 'matter'가 나온다. 다음날 경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해달라고 애원하는 아트.


그가 타시를 얻는데 집착하게 된 것은 타시로 인해 패트릭의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타시와 패트릭 사이의 네트역할로 둘 사이를 끊는데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잃게된 자신, 그렇게 잃게 된 비밀은 자신의 '성적 지향'일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임은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relationship의 메타포다. 그렇기에 패트릭과 같은 코트에서 패트릭을 마주하는 것은 자신의 성적지향과 마주하는 중요한 문제('matter')가 된다. 그리고 둘은 결국 같은 성적 지향 zone에서 만난다.


결국 아트의 결함은 '자신이 win할 코트에 서기위해' '본인의 코트에 서있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모르고 연애를 시작했고, 성실한 아트는 그 또한 어느 정도는 해냈지만 그 속에 진짜 자신이 없음을 알게된다. 하지만 아트는 패트릭과의 경기 전까지 성적지향의 문제라고 직접적으로 인식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는 win과 lose의 경계에 서있다. 더이상 타시를 'win'하지 못하자 lose로 내몰려 있다.



하지만 끝내 이 길고긴 승부, 지쳐버린 게임의 판도를 바꿀 존재, 그런 결정을 해낼 사람은 아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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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타시, 패트릭(ATP)의 관계는 그의 손에 달려있다.


아트는 타시에게 결정해달라고 말하지만 타시는 아트의 인생을 결정지을 수 없다. 그의 엄마도, 그의 신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트가 맺는 둘과의 관계의 향방은 아트의 마음에 달려 있다. 패트릭은 아트에 한해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너와 다시 playing 하고 싶다'고 말한다. 패트릭에 관한 아트의 말처럼 패트릭은 아트에 대한 감정이 존재하던 그 시절 둘의 '동성애적 관계'(아트가 말하는 where you are)에 머물러 있다. 타시는 진짜 아트가 있어야할 곳, 진짜 아트가 재밌어할 게임이 있는 곳에 아트가 있기를 바란다. 타시가 바라는 사랑, 상대에게 집중하고 헌신하며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 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다. '내가 나로 서있는 것'이다. 내가 경기할 상대와 내 코트에 서있어야 게임이 시작된다. 이건 너무 기초적이고도 당연하지만 타시에게는 있고 아트에게는 없는 것이다. 아트는 자신이 없고 타시만 있는 관계를 잃을까봐 고민하지 않아야, 오히려 타시를 얻는다. 그것이 아트를 향한 타시의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맥락을 바꾸는 것은 게임을 만든 본인이다. 아트를 중심으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아트는 아트본인의 게임을 해야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내야 하며, 내심에서 펼쳐지는 relationship의 종주를 스스로 끝내야 한다. 영화는 그의 심리를 셋의 관계 속에 숨겨놓고 그 자신에게도 숨겨놓고 있다. 아트는 자신의 마음을 찾아 그 마음의 코트에서 경기를 펼쳐야 한다.


자신의 게임에 타시가 게임체인저로 등장했다가 패트릭이 게임체인저로 등장했다가 아트는 마지막에서야 자신이 게임체인저로 등장한다. 네트와 같은 타시, 둘이 마주하자고 신호를 보내는 패트릭, 그 둘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아트가 패트릭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가능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패트릭과 타시를 바라보자 아트는 자신이 얻을 관계를 발견하면서 비로소 웃을 수 있다. 공을 치기 위해 날아오르는 아트는 네트를 넘고 패트릭은 받아 안는다. 아트는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무의식의 벽을 넘어 날아오르고 패트릭과 조우한다. 타시는 아트가 자신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자신의 사랑을 모두 쟁취한 것을 알고 기뻐 환호한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마주할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아트가 보여주는 인생의 목적이요, 사랑을 찾는 방식이다.



2024.05.07.

아트의 인생의 목적을 찾아보자



- 패트릭은 받는 남자인가(feat.나의해방일지)


- 2025.3.13 추가) 이 영화는 각 캐릭터별로 영화를 읽는 층위가 다른, 다층적인 영화에요. 이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아트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인가' 생각할 무렵이라 그런 느낌이 해석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외에는 내용자체는 크게 바뀐 것이 없어서 수정 거의 없이 글만 이사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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