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 리뷰 3. 음악
* 본 리뷰는 영화 <챌린저스>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챌린저스는 연애를 테니스에 빗댄 영화다. 어쩌면 인간관계, 어쩌면 그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감정, 또 어쩌면 사랑이야기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우리는 무수한 사랑영화를 보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음악도 좋고 도파민 터지는 결말도 좋고 각본도 좋고 (local awards는 반드시 저스틴에게 각본상을 줘야해요) 메타포인데도 테니스를 역동적으로 묘사했다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우리는 타시 대신 아트를 이렇게 사랑하지도 않았을 거고, ㅈ방망이 휘두르고 다니는 패트릭에게 알 수 없는 연민을 느끼지도 않았을 거고 유교걸 뺨을 후려치는 타시에게 동질감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계 그 자체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관계 망 속에 있는 개인의 심리에 초점을 맞춘다(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심리가 느껴진거야~). 그래서 영화 전체가 매우 섹시한 텐션이 넘쳐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 성관계 묘사는 수위가 낮다. 아트와 패트릭의 키스를 비추던 카메라는 금새 시선을 옮겨서 그들의 키스를 보는 타시의 표정을 오래 비추고, 타시와 아트의 베드신은 둘이 키스하는 것보다 뒤에 붙은 타시와 아트의 슬픈 표정을 더 오래 보여준다. 타시와 패트릭의 성관계는 아예 나오지 않고 타시가 침을 뱉었을 때 패트릭의 표정이 길게 비춰지더니 성관계 후의 둘의 대화에서도 둘의 표정이 주로 담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어떤 욕망 그리고 결함 또한 가진 개개인이 각자의 사랑을 향해 가는 여정으로 보인다. 그 욕망과 결함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서 감정이입이 가능해지는 것. -그 여정이 테니스라는 거대한 메타포로도 가려져 있기도 하고, 서로 다른 셋의 욕망과 결함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으면서 동시에 경쟁적으로도 드러나기에, 알아보기 쉽진 않지만.- 아트의 경우 자신의 성지향을 알고 인정하고 진짜 자신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았다. 아트의 마음은 자신에게 숨겨져 있듯 관객에게도 숨겨져 있어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표정으로 드러나고 무엇보다 영화 마지막에 '네트를 넘는' 행위가 퀴어무비의 클리셰여서 구조적으로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면 타시는 어떨까? 영화 전체를 통틀어 패트릭을 빼고는 (싸울 때 외에) 대사가 다들 많지 않다. 아트는 숨기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타시는 딱히 그렇지 않음에도 캐릭터의 심리를 오롯이 읽어내기 어렵다. 말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거나 눈물이 고이는 장면이 클로즈업됨에도 그 장면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하지 않은데, 타시는 아트보다 일으키는 '이벤트'의 수가 월등히 많다. 아트의 껌을 받아주고, 아트가 사랑한다는 말에는 'I know'로 응수하고, 패트릭과 바람을 핀다. 패트릭과는 말도 안되는 말로 싸우더니 얼굴에 침을 뱉는데, 이어지는 행동이 모순적이게도 키스다. 두 남자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열정의 불꽃을 튀기는데 마지막 포옹에서는 오히려 배제되고, 그럼에도 그녀는 두 남자의 포옹을 보며 '환호'한다. 어느 평론가는 타시를 '엄마 역할'로 구분했지만 어느 엄마가 자면서 가르치나;; 그럼 둘을 이어주는 중매쟁이인가? 둘이 자신의 성지향을 찾아가기 위해 거쳐가는 계단인가?
아니다. 타시라는 점은 다른 두 점을 잇기도, 떨어트리기도 하지만 그 두 점을 위해 존재하는 배경지가 아니다. 두 점을 잇고 끊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둘을 거대한 모성애로 품어내는 캐릭터 또한 아니다.
타시를 읽어내는 것은 영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점이 된다. 타시의 욕망을 파악하지 못하면 이 영화는 여성이 수단으로 등장해 마지막에 버려지는 흔한 퀴어무비가 된다. 둘을 이어주는 역할에 천착하여 모성애를 그리면 타시가 가진 결함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영화가 상업영화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어넣은 자극적인 장면이 되어버린다. 아트와 패트릭이 이어지기 위한 단계로 타시를 읽으면 타시를 추동하는 욕망들이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빌런의 역할로 추락한다. 타시가 여신이 되면 타시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몇개의 대사들이 붕 떠버리고, 아트의 사랑에 차갑게 응대하는 태도가 영화의 해석에 걸림돌이 된다.
타시 또한 자신의 욕망, 그리고 결함을 가진 한 인간으로 셋의 삼각형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한 인간이다. 타시의 사랑을 폴리아모리로 볼지, 욕망의 형태가 다른 두가지 연애의 결합으로 볼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그녀의 캐릭터 자체는 여신도, 엄마도, 수단이나 단계로 등장했다 사라지는 소모성 캐릭터도 아니다. 타시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게임의 판을 짜는 유례없이 적극적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 욕망이 드러나는 방식이 다른 둘처럼 영상연출이 아닌 배경음악으로 - 특히 가사로- 뚜렷하게 드러날 따름이다. 그리고 타시가 한 인간으로 삼각형에 등장할 때, 이 영화는 타시가 가진 다채로운 욕망 - 계급, 사랑-을 다루는 보다 다층적인 영화로 읽을 수 있게 된다.
타시의 캐릭터 리뷰 쓰기에 앞서 음악리뷰(정확히는 영화 연출에 쓰인 배경음악의 '가사'를 찾고 해석해보는 리뷰)를 쓰는 이유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타시의 BGM으로 쓰인 곡들의 가사를 살펴보고 타시의 심리를 파헤쳐(?) 볼게요.
2025.3.26
☆사랑해요 타아시☆
- 아트의 글은 지난 블로그에서 거의 그대로 이사해왔는데요, 타시는 영화관람 10번째 이후쯤부터 x(구 트위터)에 썼던 음악리뷰와 이전 블로그, 모 커뮤 등에 쓴 글 등을 취합해서 다시 쓰느라고 업로드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음악리뷰는 번역도 있고 해석도 있고 장면에 걸리는 가사를 따로 디비 봐야 하는 면도 있어 곡마다 따로 글을 쓰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