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 리뷰 4. 장면들
* 스포일러 주의: 본 리뷰는 영화<챌린저스>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5) 패트릭의 라커룸: 남성성의 놀이터 -다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sosorap/88
2019년 뉴로셀챌린지 남자단식 결승전 전날 아트와 패트릭은 8년만에 사우나에서 다시 만난다. 그들이 만나지 않은 동안 아트는 타시와 결혼하여 아이를 얻고,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며 아트의 이름을 딴 광고도 있다. 반면 패트릭은 둘 모두에게서 떨어져 나와 지역대회를 전전하며 살았던 듯하다. 아트는 부자가 되었고 패트릭은 가난해졌다. 13년전 미친 왕과 후궁 사이같았던 이들은 이제 여러모로 역전된 위치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패트릭은 'Can you do me a favor? can you not demolish me tommorow?' 라는 말로 둘 사이를 13년 전 주니어US오픈 남자단식결승전 전날로 돌리며 입장한다. 이 말은 아트가 다음날 자기를 너무 잔인하게 이기지는 말아달라며 패트릭에게 했던 말이다. 패트릭은 이 말로 둘의 관계를 다시 13년 전의 서열관계에 데려다놓고자 한다. 예전에는 아트의 실력이 떨어져서 아트가 lapdog이었다면 이번에는 패트릭이 실력이 떨어지니까 패트릭이 밑으로 들어가겠다는 의미로 말이다. 13년이 지나도, 바닥으로 떨어져도, 패트릭은 여전히 서열이 중요한 남성성의 세계관에 갇혀있다.
패트릭의 말은 아트의 '비참한' 과거를 되새기게 하는 시비의 의미이기도 하다. '너 이런 부탁을 할 정도로 비리비리했었지'라는. 그리고는 자리에 앉아 일부러 타시를 언급한다. '니가 원하던 타시도 빼앗겼었지'라는 의미로. 아트가 기억도 안나는 옛날일 가지고, ("when we were teenagers") 식으로 응수하자 패트릭은 비웃으며 20대에 타시를 만나 바람을 피운 일을 떠올린다. 서열싸움이 시작되었다. 사우나라는 '실내'-챌린저스에서 내면이 드러나는 공간-에서 서로의 내면이 피튀기게 드러나는 서열싸움이다.
하지만 서열싸움은 아트의 'matter'와 함께 싱겁게 마무리된다. 패트릭이 비웃듯 '넌 나한테 이긴 적은 없지' 라고 말하니 아트는 여기 못 이겨본 사람 많다며, 'This is the game about winning the point that matters(이건 중요한 포인트를 따내는 게임이야)'라고 말한다. 즉, 아트에게 패트릭은 'the point that matters'가 아니니 이기지(얻지) 않아도 상관없다, 는 의미다.
넌 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아
이 말은 패트릭의 감정을 건드린다. 패트릭에겐 언제나 아트가 the point that matters, 중요해서 얻고 싶은 사람이었나보다. 패트릭이 'I don't matter?'라고 묻자 아트는 '세상 어느 팬에게도 넌 중요하지 않다'고 냉소한다. 사우나에서 시작한 둘의 테니스는 격한 감정을 유발하고 패트릭이 한 방 먹이고 또 두 방 먹이고 쭉 이기다가 다 이긴 것 같은 싸움을 3세트에서 크리티컬 힛을 맞고 나가떨어진다.
아트는 옛날의 비리비리한 모습이 아니다. 그걸 보여주듯 아트는 일어나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듯 서서 패트릭을 내려다본다. 패트릭이 너와의 경기가 그리웠다고 말하자 아트는 나는 그립지 않았다며, 그러기에 자신은 너무 늙었다는 말로 패트릭의 진심을 뭉게버리며 나가버린다. 과거에 타시와 패트릭 사이를 이간질하려던 아트를 패트릭이 한 방 먹이던 장면이 반복/변주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아트의 밑에 기어들어가는 척 아트의 멘탈을 흔드려던 패트릭이 오히려 한 방 먹고 being demolished.
하지만 이 장면은 아트가 그 날 저녁 타시에게 'Tell me, it doesn't matter if i win tomorrow'라고 간청하면서 거짓임이 드러난다. 아트에게 패트릭 혹은 다음날 패트릭과의 경기는 너무나 중요한(matter) 것이었다. 둘의 사우나 장면은 아트와 패트릭의 힘의 서열이 역전되었음을 보여주는 한편, 자신의 마음을 숨김으로써 오히려 아트와 패트릭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된다. 여전히 힘과 서열, 사회적 지위가 중요한 패트릭을, 아트가 자신의 힘과 서열, 사회적 지위로 있는 힘껏 깔아뭉게준 한편, 둘의 서열싸움 이면에는 외면과 상관없는 연애감정이 있다. 그리고 패트릭에겐 '지는 것'보다 '아트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상처를 준다.
패트릭은 세상을 서열로 보는 결핍이 존재한다. 그 서열 속에서 온정적으로 보호하려던 두 관계-아트와 타시-는 패트릭이 스스로 서열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타시를 뺏은 아트 앞에 다시 칼을 갈며 나타난 패트릭은 다시 자신의 지위를 올려 아트를 뭉게버리고 타시를 가져올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스스로의 내면에서부터 무너진다. 패트릭은 아트를 뭉게버리고 싶을까? 아트를 뭉게고 자신의 세를 과시하면 타시는 돌아오는 게 맞을까?
2025.9.18
패트릭은 아트가 자신이 무너진 틈을 타 타시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할 것이다.
- 라편으로 패트릭의 라커룸: 남성성의 놀이터를 완결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패트릭의 음악으로 찾아 뵐게요.
- #챌린저스 절찬리 상영중! 모두 같이 관람하고 이야기 나눠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