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챌린저스> 리뷰 3. 음악
* 본 리뷰는 영화<챌린저스>의 결말을 담고 있습니다.
아디다스파티에 간 패트릭과 아트의 뒤로 Nelly- Hot in Herre가 흘러나오다 끝나면서 타시가 자리를 뜰 때,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David Bowie - Time Will Crawl
https://youtu.be/QTdA6MtroUY?si=93uiILqIV5_-xBUD
I've never sailed on a sea
나는 한 번도 바다를 항해해본 적이 없어
I would not challenge a giant
난 거인에게 도전하지도 않겠지(아트가 사진을 찍는 타시를 본다)
I could not take on the church
난 교회에 맞설 수 없어(카메라에 패트릭이 비친다)
Time will crawl 'Til the 21st century lose
내가 꿈꾸던 미래가 무너질 때까지 나는 멈춰있겠지
I know a government man He was as blind as the moon
나는 주어진 것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달처럼 스스로 빛나지 못하지
He saw the sun in the night
나는 스스로 빛나는 인간을 보았어
He took a top-gun pilot
나는 그를 조종사로 데려왔어 (나라는 비행기에 태울거야)
He made him fly through a hole 'Til he grew real old
그리고 그는 나를 그가 가고픈 방향으로만 몰아넣었어 아주 오랜 시간동안
And he never came down He just flew 'til he burst
나는 죽을 때까지 나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했지
(나는 터질 때까지 나자신을 소모한 후에야 나자신으로 돌아오는 법을 배웠지)
* 보위의 곡은 권력에 소모당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조적이고 비판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나는 이 곡이 아트의 시선, 아트의 자아정체성을 반영하는 곡으로 보아 영화에 맞춰서 의역해보았다.
거인과 교회에서 각각 타시와 패트릭을 비추는 것으로 보아 이 노래는 아트의 노래로 보인다. 영화에 나오지 않는 18살 때의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 아트가 타시를 처음 만났을 때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아트는 바다를 항해해 본 적이 없는 배다. 그런데 뒷부분으로 가면
He saw the sun in the night
나는 스스로 빛나는 인간을 보았어
He took a top-gun pilot
나는 그를 조종사로 데려왔어 (나라는 비행기에 태울거야)
탑건파일럿을 데리고 왔단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날아오른다. 그러니까, 둘을 만나기 전 아트는 '배를 조종하는 사람'이 없는 배다. 이건 좀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온다.
I know a government man He was as blind as the moon
나는 주어진 것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달처럼 스스로 빛나지 못하지
(관료는 곡 자체의 의미에서 권력을 의미하는 것 같지만 나는 '본인'에 대한 은유로 '시스템에 순응하는 인물'로 해석했다)
아트는 스스로를 조종하지 못하는 배이고, 스스로 빛나지 못하고 해의 빛을 반사해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기든스적으로 봤을 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아트는 스스로 성찰하여 자아정체성을 만들지 못하는 현대인이다. 그는 스스로 네러티브를 해내지 못하고 타인의 성공한 서사로 자신을 채워왔던 것. 이것은 패트릭과 아트의 복식경기에서도 보인다.
I would not challenge a giant
난 거인에게 도전하지도 않겠지(아트가 사진을 찍는 타시를 본다)
I could not take on the church
난 교회에 맞설 수 없어(카메라에 패트릭이 비친다)
그는 혼자 자기자신을 찾는 모험을 하지 않는다. 대단한 거인을 맞서기 위해 그만큼 성장할 자신도 없고 기존의 시스템에 반항할 자신도 없다. 그는 패트릭을 욕망하지만 그 욕망을 직시하느라(동성애) 기존의 체계에 반항할 만큼 스스로를 믿지 않는다. 그런 그가 패트릭 곁에 있는 것은 패트릭이라는 성공한 서사가 자신에게도 공급하는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저 옆에 있기만 해도 자신감의 잔고가 채워지는 패트릭이라는 주머니. 그는 자신의 욕망을 회피하고 패트릭의 곁에서 패트릭의 자아정체성-어쩌면 높은 지위-을 공유하는 안전한 길을 택한다.
하지만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자아가 없는 아트는 끊임없이 불안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잠시 사우나에서의 대화로 가보자.
아트가 패트릭이 거슬린다(I do find you disturbing)고 말하자 패트릭은 자기는 여자들에게 결혼용은 아니라며 거슬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트는 그럼 넌 무슨 용도인데? (what were you for?) 하고 묻고 8년 전 타시와 패트릭이 만나던 장면을 떠올린다. 재밌는 건 이 대화가 아트가 타시 옆에 있어서 패트릭이 거슬린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지만, 다른 의미로 아트에게 패트릭이 '불안하게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된다는 것. 아트가 맞아, 넌 날 불안하게 만들어(I do find you disturbing) 한 이후, 너 왜 그랬는데? (what were you for?)라고 묻는 걸로도 해석될 수도 있다. 이어지는 회상장면에서 타시가 패트릭을 만나는 장면을 보았는데, 잠시 후 돌아보자 둘 모두 사라져 있다. 이 장면은 13년 전 타시와 패트릭 둘이 사귀고 난 후 아트가 느낀 느낌과 같다(아트가 타시를 만날 때 나오던 노래에 네가 옆집여자랑 잔 후 나는 뒤에 홀로 남겨졌다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아트가 패트릭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타시를 빼앗길까봐' 느끼는 거슬림이면서, 동시에 패트릭과 타시가 만나면 둘이 사라져버려서 자기는 불안 속에 혼자 남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2025.10.17
기든스의 자아정체성을 가진 아트
- 패트릭의 음악과 아트의 음악은 이런 식으로 교차해서 올라올 예정입니다. 둘은 불과 물이고 허세와 허무, 가득참과 비어있음, 열정과 안정,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캐릭터에요. 중국식으로 말하면 음과 양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언뜻 둘은 서로를 싫어하고 안 맞아보이는데 어쩌면 자신에게 부족한 게 상대에게 있으니 상대를 욕망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 마지막에 서로를 만났을 때 서로를 채우겠지요. 타시를 중간에 둔 팽팽한 tie 상태가 깨지고 둘 사이에 연결선이 생기면서 완벽한 삼각형이 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