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인가 이젠 우리도 케이블을 봐야겠다고 엄마가 말했다. 케이블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우리 집에도 입성한 인터넷. '엄마의 휴대폰 + 케이블 + 인터넷'이라는 세트 구성 요금으로 시작된 디지털 문명은 그 후로 몇 년째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케이블이 없을 때는 한 손에 꼽을 수 있는 개수의 지상파 채널을 틀어 놓았다. (케이블이 나오는 지금도 지상파가 틀어져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다만, 주위에서 잘 나가는 케이블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오면 공감할 수 없을 뿐이었다. (그냥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된다.) 인터넷을 사용할 일이 있으면 주말에 도서관을 갔고, (전자정보실의 사용 가능 시간은 두 시간이다.) 집에서 꼭 필요할 때는 집안의 유일한 스마트폰인 엄마의 휴대폰으로 테더링을 해서 사용했다.
아주 조금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나는 나름 희귀한 우리 집의 3無를 즐겼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희한하지 않냐는 듯이 ‘내게 없는 세 가지’를 이야기하곤 했다. 스마트폰, 케이블, 인터넷이 없다고. 그 말속에는 세 가지 없이도 잘 살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이상한 대견함’도 들어있었다.
대신 집에는 매일 아침 신문이 배달되어 왔고, 도서관에 갈 때면 언제나 책을 한 아름 빌려 들고 왔다. 이제는 지상파가 아닌 수백 개의 채널이 나오고, 언제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점은 없다. 오히려 TV와 웹 서핑에 쓰고 마는 불필요한 시간은 늘었고, 도서관을 찾는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는 단점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