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인 내가 어린 나에게 해주고픈 말

하다 이야기

by 오늘

‘스킨스’라는 영국 드라마가 있다. 대놓고 거하게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로, 온갖 커뮤니티에서 늘 화두였다. 특정 장면을 캡처한 이미지가 많은 미니홈피에서 보였던 추억의 드라마인데, 나는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더 좋아했다. 방영시기는 다르지만 등장인물 대부분이 10대라는 점은 비슷한데 내 취향은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가 더 가깝다.


(제가 본 영국 드라마 대부분이 어둡고, 노골적이며, 극단적이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주인공은 섭식장애와 잦은 자해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폭식과 자해 욕구에 시달려서 꾸준히 상담치료를 받는다. 그때 나눈 대화들에 끌렸고, 그것 때문에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를 좋아했다.


마맷02.jpg


자신이 ‘과체중이고, 못생겼고, 일을 망쳐버리고, 노력해도 늘 어긋나고, 치료해도 소용없는, 미친 사람’이라서 싫다는 주인공에게 상담의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느끼게 된 시기가 언제니? 10살? 그렇다면 저 소파에 10살인 네가 앉아있다고 생각해봐. 저기 앉아있는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뚱뚱하고, 못생기고, 골칫거리라는 걸 알게 됐어. 저 소녀에게 뚱뚱하다고 말해봐. 못생겼다고 말해봐. 그게 네가 매일 너 자신에게 하는 소리니까.


싫어요.


그럼 저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니?


좋아 보여요. 완벽한 것 같아요.


그게 지금 네가 너 자신에게 해줘야 할 말이야.


어릴 때부터 소심했다. 심하게 자책하고, 나를 깎아내리고,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내가 못나서, 내가 못해서, 내가 서툴러서, 내가 형편없어서 어그러지고, 성장하지 못하고, 해도 소용없다고 여겼다. 자신 있는 일도 ‘정말 잘할 수 있을까? 나는 한참 모자란데 망치면 어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확인하다가 나서지 못한 적도 많다.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는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 삼천포로 스며든 경우도 허다하다.


결말은 늘 엉망이다. 마지막엔 항상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안 된다니까. 역시 나는 못났어…’ 나의 하찮음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이런 습관적 자학은 여전히 나를 짓누르는데 그때마다 저 장면, 저 대사를 떠올린다.


어른인 내가 어린 나에게 ‘너는 안 돼.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잘못해도 괜찮고, 서툴러도 괜찮아. 잘할 수 있다는 느낌을 잊지 마.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해. 무엇보다도 네가 잘하든 못하든 서투르든 능숙하든 넘어지든 주저앉든 난 널 응원해. 널 믿어.’라고 하고 싶다. 나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나의 값어치를 재단하는 건 이미 사회가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 편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내 편이 되어주고 싶다.


- 하다




nadograe.com/storiG









사진 © facebook.com/mymadfatdiary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