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연애를 하면 상대에게 내가 지금 생리를 하고 있음을 알려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생리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알린다기보다는 만날 날을 정하거나 데이트 중 심하게 아픈 경우 생리를 얘기하게 된다. ‘그 날은 데이트가 좀 힘들 것 같아’ 라거나 ‘아파서 약을 사 먹어야 할 것 같아’ 정도로 뭉뚱그려 말하면 상대가 대충 눈치를 챘다.
이성애자라 남성과 연애를 했고, 연애 중이다. 그들도 내가 ‘여성’이라 한 달에 한 번 생리를 한다는 것은 안다. 얼마나 아픈지, 양은 어느 정도인지, PMS는 있는지 등 자세히는 몰라도 배웠으니 알고는 있을 것이다.
10대와 20대 초반에 만난 짝꿍들에겐 생리라고 말하지 못했다. 1985년에 태어났고, 타인에게 명확하게 생리라고 말해선 안 됨을 은연중에 강요하던 사회에 소속되어 그랬다. TV 포함 매체에서는 혈을 파란색으로 표현하고, 생리를 ‘그 날’이라 칭하고, 생리대를 사면 검은 봉투도 함께 받던 세대이며, 생리라 말하는 것보다 얼버무리는 게 ‘여성이 지녀야 할 소양’으로 여겨지던 환경에 살아서 그랬다. 더군다나 남성인 짝꿍에게 생리라 얘기한다?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둘 다 말을 잃을 게 뻔했다. 실제로 그런 적도 몇 번 있고.
20대 후반부터는 짝꿍 포함 주변의 남성에게 생리라고 정확하게 말했다. ‘생리 중이니까 오늘은 많이 걷지 말자’, ‘생리 중이라 너무 아파. 다음에 보자’라고 얘기했다. 생리는 나쁜 것도 아니고, ‘생리’라 말을 해도 이상할 게 없는데 잘못된 인식과 그릇된 고정관념 때문에 어둠의 단어가 된 것이니 굳이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생리는 별 일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별 일이 아니니 생리를 하고 있는 나부터 굳이 돌려 말하기 않기로 했다.
지금 짝꿍과 친구로 7년, 연인으로 4년을 보냈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에도,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생리를 생리라 말했다. 처음엔 ‘내가 생리를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별 반응이 없다. 자연스러운 걸 자연스럽게 하고, 말하는데 그게 왜? 뉘앙스다. 생리대 사달라고 하면 어떤 걸 사야 해?, 생리할 때는 잘 먹어야 하니까 고기를 먹자!, 질염에 무슨 무슨 영양제가 좋대 등등 생리 및 여성 질환 질문을 하기도 한다. 천성인지 학습의 결과인지, 내가 꾸준히 아무렇지 않게 생리를 말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이유야 어쨌든 거리낌 없이 대화를 나눈다. 지극히 평범하게 다룬다.
지난 생리 때도 짝꿍에게 ‘생리 중이라 몸과 마음이 매우 예민하다는 걸 미리 말할게’라고 했다. 짝꿍은 늘 그랬던 것처럼 ‘진통제는 샀어? 안 샀으면 사러 갈까? 철분제는 여전히 먹고 있지? 생리 중이니까 고기 먹어야겠다.’고 답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