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워니 이야기
카톡방의 알람이 울린다. 그룹으로 여자아이들 성교육을 시키고 싶은데, 좋은 선생님을 추천해달라는 메시지. 어머, 벌써 아이의 성교육이 내 코밑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건 어렵지만, 그 중에서도 성교육은 독보적 1위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부터 아이와 부모에게 성교육을 한다. 삼십 년 전 중학교 가정시간에 배우던 것과는 내용도 다르고 체계도 다르다. 그래서 머리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성은 소중한 것이며, 내 몸을 스스로 잘 알아야 하고, 성기를 제대로 된 명칭으로 부르고, 부모가 스스럼없이 부끄럼 없이 성에 대해 자연스러워야 한다. 요약하면 이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내용이 머리에서 입으로, 가슴으로 내려와 아이와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할 생각만 해도 얼굴부터 벌게진다는 것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중이었는데, 아이가 성교육을 받았는지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애기가 어떻게 생기는 줄 알아?
꼬리 달린 정자 중에서 1등 아빠 씨가 엄마 뱃속에 있는 엄마 씨랑 만나서~~~~
그런데, 아빠 씨가 엄마 씨랑 어떻게 만나?
내 얼굴은 이미 불타는 고구마, 택시기사 아저씨는 큼큼큼. '얘야~ 엄마는 말해 주고 싶으나 듣는 귀가 너무 많구나~~' 속으로는 이리 생각하며 난 허둥지둥 말했다.
이따 얘기해줄게, 이따. 엄마 전화기로 뽀로로 볼래?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1부터 100까지 다 잘못되었다는 걸.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성교육보다는 택시기사님 앞이라 부끄러움이 순식간에 차 올라 어영부영 넘어가버리고 말았다.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난다. 난 왜 성을 부자연스럽고, 부끄럽게 혹은 과장되게 그도 아니면 킬킬거리며 우습게 생각하는 걸까? 고작 유치원생 아이 앞에서도 바들바들 떨 정도면서.
어린 시절 나는 어땠을까? 지금 내 모습이 우리 엄마의 모습과 겹친다. 엄마는 초경을 시작한 나와 마주해 이야기하길 꺼렸던 것 같다. 엄마의 역할은 딱 생리대를 준비해 주는 것에서 막을 내렸다. 그러니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사춘기라 엄마와의 갈등이 최고조여서 그랬을 수도 있다.) 생리의 불편함이나 생리기간을 잘 보내는 꿀팁도 얻을 수 없었다. 온몸으로 부딪쳐 스스로 알아갔을 뿐.
아이의 초경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모르는 척할 것인가? 마음 단단히 먹고 아이와 성에 대해 소통할 것인가? 어느 기준, 어느 수준까지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도 아직은,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전문가 선생님을 찾는 거겠지. 그래, 사십 년을 넘게 깜깜히 성교육의 틀에서 살아온 나, 조금 천천히 가보자. 급진적으로 생각하려 오버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아이와 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딱 그 정도.
성교육은 전문가 선생님께! 대신 나도 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자연스러워지도록 힘내 봐야겠다. 아이의 열두 살은 희망차고 싱그러운 봄이 되어야 하니까.
- 원더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