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틈 없는 퇴근 지하철이었다. 몸을 구긴 채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나를 달래던 중이었다. 누군가 내 발을 꾸-욱 밟았고, 한참 떼지 않았다. 발을 빼려 했지만 힘에서 밀렸고, 뭐라 말을 했지만 마스크에 먹혔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 사람을 밀면서 ‘저기요!’ 힘줘 외쳤다. 그제야 내 발을 놔준 그는 사과도 없었고, 미안함을 담은 제스처도 없었다.
유독 피곤한 퇴근길이었다. 회사에서 잘까, 길에서 잘까 고민하다 겨우 퇴근 지하철을 탔다. 거기에서 발이 밟히고, 우물쭈물 말도 못 하다가 사과 없는 눈초리만 받았다. 신체적 피로와 심리적 피곤이 만나 나를 뒤덮었다. 부정적으로 흐르는 게 특기인 생각은 여지없이 우울 구렁텅이로 흘렀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커지는 서러움을 진정시키려 예전에 본 문장을 떠올렸다.
친절하세요.
당신이 만나는 모든 이들은
저마다 당신이 전혀 모르는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도 피곤했겠지, 너무 피곤해서 다른 사람 발을 밟은 것도 몰랐겠지, 악의를 갖고 나를 괴롭히려 그런 게 아니겠지, 뭐 하러 그러겠어.
연달아 몇 개의 문장을 나열했더니 삐죽 튀어나온 입술이 쑥- 들어갔다.
그래, 세상살이가 쉬운 사람은 없지. 다들 저마다의 이유로 힘들지. 겉으론 태연해 보여도 속은 알 수 없지. 자기 마음을 온전히 그대로 얼굴에 담을 수 있는 사람도, 입 밖으로 뱉을 수 있는 사람도 드물지. 그런 기회를 얻거나 그렇게 자기가 상황을 유도할 수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참고, 버티고, 다듬고, 걸러내며 살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상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런 효과가 전혀 없다고는 못하나, 타인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판단은 폭력 섞인 자만이 아닐까 싶다.) 울컥한 마음, 자책하려는 습관, 차오르는 분노를 잠재울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전쟁 중이니 (전쟁의 종류와는 별개로) 화가 날 수 있고, 서러울 수 있고, 피곤할 수 있고, 두려울 수 있고, 지칠 수 있고, 슬플 수 있으며 좌절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감정은 자연스러우며, 타인의 언행 역시 ‘그럴 수 있지’ 납득이 된다. 그럼 날 선 감각이 차분해지면서 웬만한 일에는 자극받지 않는다. 누굴 격하게 미워하는 감정소비와 내 마음의 방향키를 남의 손에 넘겨주는 실수도 줄어든다.
우리는 모두 각자 전쟁 중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럴 수 있고, 당신도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자꾸 내 발을 밟는다면 다음번엔 좀 더 세게 화를 낼 것이다!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