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이미 말한 적 있지만,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모든 가정이 그러하듯 우리집 역시 평탄하지 않아 엄마와 나는 많은 일을 겪어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엄마는 딸인 네가 있어서 좋은데…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고 해서 걱정이야…’라고 했다.
내가 엄마 팔자를 닮아 ‘결혼’으로 인생이 극단적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것 말고라도 인생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엄마 팔자를 닮아 그런 것이고, 그러니 모든 일의 원인은 엄마이며,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까마득한 엄마로부터 전해진 그 ‘팔자’ 때문이니까 결국 또 원인은 엄마이자 여자인 ‘그녀’에게 있다는 것.
이 말도 안 되는 주입식 교육을 대한민국은 여자들은 끊임없이 받았다. 이 말이 싫고, 이 말을 엄마가 나에게 하는 것도 싫으며, 엄마가 그 말로 자책하는 것도 싫고, 많은 여자들이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며 자신 때문에 귀한 딸의 인생에 오점이 남았다 생각하는 것도 끔찍하다.
실제로 모녀의 감정조절 능력은 닮아가고, 딸은 엄마의 말을 닮아간다고 한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엄마가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으니 유대관계가 긴밀하게 형성되고, 딸이 엄마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으며, 딸이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런데 남자아이는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이, 엄마가 자신의 부당한 삶을 얘기하고, 동조받을 수 있는 대상은 딸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그들의 고통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들도 힘들다’고 인터뷰했다. [출처 : MBC 다큐스페셜 ‘엄마와 딸’]
사회가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아서 딸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렇기에 여성인 엄마가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은 똑같이 여성인 딸이며, 기본적으로 딸은 엄마의 말을 닮아가니, 세상이 주입한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는다’는 명제가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결국 아무도 듣지 않는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딸뿐이라 고통이 엄마에게서 딸로 대물림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딸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한다. 만약 젊은 시절의 엄마를 만나게 된다면 ‘결혼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며 혼자 살아’라고 전하고 싶어 한다.
‘원래’ 딸이 엄마 팔자를 닮는 것과 ‘환경’ 때문에 닮아가는 건 결이 다르다.
딸에게 그런 말을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말하지 않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엄마의 심정은 어떨까. 엄마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딸의 심정은 또 어떨까. 그런 말을 하는 심정을 이해는 하지만, 원래도 무거운 삶에 또 짐이 더해진 딸의 삶은 어떨까.
오늘 문득, 내가 빨리 결혼하길 바라면서도 결혼 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을까봐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적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엄마 본 지가 한참인데, 언제쯤 엄마집에 갈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