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뭔가 달랐다. 미묘하게 달랐다. 꽉 끼던 치마가 약간 헐렁하고, 거울 속 내가 약간 낯설었다. 체중조절을 한 것도 아닌데 보름 만에 5kg이 빠진 탓이었다. 살은 내 것인데 나와 상의도 없이 야금야금 빠져나가더니 지들 대신 온갖 건강이상과 통증을 남겼다. 원래도 남부럽지 않은 저질체력, 허약체질인데 더 시름시름 앓았다.
갑상선? 이상 없음. 위장? 이상 없음. 빈혈? 아님. 정상 정상 정상. 얼굴은 허옇게 뜨고, 시든 콩나물처럼 비실비실 생기가 없는데 검사결과는 정상이었다. 이쯤 되니 ‘설마…?’ 싶고, 마지막으로 ‘그곳’에 가야하는 건 아닌가 싶고… 그렇지 않아도 몸에 생긴, 많은 불편과 통증 중 하나에 질염도 있으니… 가야 하는데… 가는 게 맞는데… 그런데 왜 여성의학과에 가는 건 반감부터 들까?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빠를 때에 원인을 찾고, 쳐부수자! 굳게 마음먹고 집 근처의 여성의학과에 갔다. 아뿔싸. 연세 약간 있으신 남성의사님이 계시네? 의사인데 뭐, 난 오늘 적을 찾고 무찌르러 온 건데 뭐, 문진만 할 건데 뭐. 뭐뭐뭐 하면서 증상을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의사님이 ‘한 번 볼까요?’ 하자 간호사님이 나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진찰실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둡고, 좁은 공간이 나왔다.
“이거 입으세요.”
간호사님이 긴 치마를 한 벌 줬다. 그걸 입고 멀뚱멀뚱 있었다.
“여기에 다리 벌리고 앉아 계세요.”
의자는 편안함을 준다.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의자가 보이면 일단 앉는 편이라 나에게 의자는 ‘더 편안함’을 뜻한다. 그런데 의자가 있음에도, 거기에 앉는 걸 공식적으로 허락받았음에도 편안하지 않았다. 되레 불편했다. 어색하게 앉아서 두 주먹을 쥔 상태로 10여분을 견뎠다.
“앞으로 사흘에 한 번씩 와서 치료를 받도록 해요. 그리고 잘 먹어요. 무조건 잘 먹어야 해요.”
살이 갑자기 빠지면서 몸의 균형이 무너졌고, 그 여파로 질염까지 생겼다고 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한다. 가는 게 맞다. 아파서 신경이 예민해지고, 몸이 불편하면 될 일도 안 되고, 돼야 할 일은 망친다. 게다가 보이지 않는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의 생리(生理)와 관련된 일 그리고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주는 일을 알려면 더 병원에 가야 한다. 이상과 통증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가서 지금의 내 몸을 들여다볼 필요 역시 있다. 그러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병원 의자에 앉아 자세를 취하는 것 등)은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나이 무관하게, 임신 출산과 상관없이. 물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음에도 나는… 계속… 왜냐하면 의자가… 선생님의 성별이… 내 인생에 임신 출산 육아는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다른 시선, 다른 판단이 있으면 좋겠다. 다른 방법도 있으면 좋겠다. 여성이니까 여성의학과에 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선, 교복입은 학생들 비롯 모두가 건강을 위해 여성의학과에 가야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말이다. 편하게 앉을 수 있는 의자면 더 좋겠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안락하고, 합리적이며 사회적, 성적으로 폄하할 수 없는 방법 말이다. 이미 그렇다고 말하지 말기를. ‘산부인과’가 저급한 게시물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다들 한 번씩은 봤을 테니까.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