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이야기
“혹시 생리대 있니? 있으면 빌려줄래?”
같은 반이지만, 그리 친하지 않은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없어… 미안…”
만약을 대비해 항상 생리대를 가지고 다니는데 불쑥 이렇게 대답하고 말았다.
기억력이 0에 수렴한다. 누군가가 조금 전에 본 것이나 어제 먹은 음식을 물으면 수없이 많은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멜로디를 만든다. 때론 ‘내 뇌는 장식일까?’ 진지하게 고민한다. 사람이라면 30년 넘게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이럴 수는 없을 텐데 싶을 정도로 건망증이 심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 일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내게 거절당한 아이는 괜찮다며 다시 빌리러 갔고, 미안해서 차마 뒷모습을 바라보지 못했다. 왜 생리대가 없다고 했을까. 소심해서 그랬을 것이다. ‘만약 내 생리대가 그 아이가 사용하는 것과 다르면 어쩌지? 그래서 불편함을 주면 어쩌지? 빌린 것이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그러지 못해서 그 아이가 계속 내게 미안함을 가지면 어쩌지? 빌려주면서 갚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면 될까? 그 말을 꼭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어쩌지?’ 찰나에 별별 걱정을 다 하다가 그럴 바엔 빌려주지 않는 게 낫겠다 싶어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얼마나 당혹스러운데. 그게 생리일 경우엔 어마어마한 당혹감이 나를 집어 삼키는 걸 뻔히 알면서. 그래서 비상용 생리대를 가지고 다니는 건데 어떻게 생리대를 빌려주지 않을 수가 있니. 20년도 더 지난 일임에도 자책 중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생리든 타인의 생리든 ‘생리’에 관한 일엔 마음이 쓰인다. 왜냐하면 생리 자체가 아무리 겪고 또 겪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일, 만반의 준비를 해도 편하게 맞이할 수 없는 일,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치가 쌓여 다양한 사고(?)에 적용가능한 나름의 대처방안을 갖고 있다. 생리는 그게 무색하게 허를 찌르며 ‘이건 몰랐지? 약 오르지?’ 뒤통수를 때린다. 생리 어플은 예정일을 매번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믿고 산 생리대는 나쁜 물질로 괴롭히고, 생리대 살 돈까지 똑 떨어지는 등 천차만별 각양각색 예측불허의 일이 너무 많다. 이런 ‘내 의지 밖’의 생리인생을 산 여성들은 ‘생리’라는 교집합에서 더 끈끈하게 이해하고, 돕고, 공감하게 된다. 아마 그래서 생리대를 빌려주지 못한 그 일이 명치에 계속 남은 것일지도. 단순히 그 아이만의 일이 아닌 우리 모두 겪었고, 겪고, 겪을 일이기 때문일지도.
이제는 그 시절의 소심함 따윈 치워버리고 기꺼이 생리대를 나눈다.
생리와의 피 나는(?) 전투에서 우리는 패배하지만,
돕고 돕다 보면 언젠가는 승리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