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의 무엇을 사랑하기

앰버 이야기

by 오늘

살아 숨쉬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 이외의 누군가에게 마음 붙이고, 그를 생각하고 정을 주는 건 삶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면서도 꽤 많은 시간과 자원을 필요로 한다. 주는 만큼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아주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나를 정서적으로 지치고 다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무형의 무엇에 마음 붙여 보자.’ 세 가지 ‘무형의 무엇’에 대한 얘기를 해볼 생각이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바다를 보다가 든 생각이다. 동네가 동네이다 보니,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바다가 보이는 노선이 있다. 바다에 크게 마음이 동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뜨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의 바다는 좋다. 찬란한 빛깔의 물비늘을 덮은, 깊디깊은 바다가 그 아래에 무수한 생물과 무생물을 품고 있다는 게 즐겁다. 뭍에 가까워질수록 옅어지는 바닷물이 수평선으로 갈수록 짙다 못해 검어 보이는 것도, 그 위로 성기게 얹힌 햇빛도 이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 버스에서의 시간은 길어봐야 40분인데 바다를 본 뒤의 여운은 종일이다.


이건 오늘 아침에 든 생각.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시간은 약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가 된다(편도 기준). 도착 안내를 알리는 음성과 선로의 마찰음, 사소한 소리들이 뒤섞인 지하철의 소음을 가리기 위해 즐겨 듣던 음악을 어느 날은 멈췄다. 텅 빈 이어폰을 귀에 끼고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게 참 좋더라. 4호선의 창 밖이라고 해 봐야 별 거 아닌 풍경인데 말이다. 그 이후로는 종종 음악이 없는 이어폰을 끼고 멍하니 앉아 간다. 그러다 꾸벅 졸기도 하고, 지하철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물리적으로 적당히 막힌 귀 속이 잔잔한 소리들로 채워지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다.


마지막은 최근 몇 년 간 해온 생각. 일과를 끝낸 후 집으로 돌아가서 깨끗이 씻고 낡은 잠옷을 입는다. 그 상태에서 눈을 감고, 잠들기 직전까지. 어둡고 고요한 가운데 가끔 들리는 고양이의 발소리. 몽롱하고 나른한 기분으로 밀려오는 잠을 받아들일 때가 좋다. 누군가가 잠을 두고 죽음을 연습하는 과정이라고 했던 게 기억 난다. 몇 년 전에 접한 말인데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죽음이 두렵고, 그 언젠가 다가올 숨이 멎는 순간이 편안하길 바라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죽음을 연습하는 평화롭고 부드러운 순간을 좋아하는 거다. 매일 밤 나도 몰래, 그 어느 날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덜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거창한 명분을 붙이고 보니 내가 되게 멋있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들을 가지고 글을 만들다 보니, 생각을 조금 하게 됐다. 삶이 나를 속이고 내게 생채기를 내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건 다른 게 아니라 이런 일들 때문이다. 작은 즐거움을 주는 일들을 사랑하며 나는 나를 살아가게 한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작은 즐거움을 주는
‘무형의 무엇’을 사랑하며 삶을 살아내길 바란다
비록 그것이 쉽지 않을지라도

- 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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