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세계, 내가 외면한 세계

하다 이야기

by 오늘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 똑똑똑 노크도 하지 않는다. 예의 없는 녀석, 정이 들지 않는 녀석.


잠에서 깨고, 몸을 일으키는데 허리에 번개가 쳤다. 그대로 다시 누웠다. 이 고통의 원인이 뭘까. 어젯밤에 뭘 했더라. 아니, 그건 차치하고 출근해야 하는데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연차와 병가를 꿈꾸지 못하는 나의 처지(당시엔 비정규직이었다.)는 역시 힘이 셌다. 낑낑거리며 대충 씻고, 출근을 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허리가 찌릿찌릿, 버스가 작은 돌멩이만 넘어도 허리가 짜릿짜릿했다. 이렇게 아플 수가 있다니.


“뭐 했어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전 운동도 안 해요… 일도 앉아서 하고…”


허리를 콕콕 누르고, 이리저리 보던 의사님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허리에 근육이 이렇게 없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근육도 없어요.

이런 허리는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죠.”


아하! 그렇구나! 나란 사람, 근육 없는 사람, 유니크한 사람. 그때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병원에 들렀다. 매번 주사를 6대~8대씩 맞았다. 온몸을 휘감은 통증과 내 몸에 꽂힌 주삿바늘은 누가 더 날 아프게 할 수 있는지 겨루기를 했다.


“좀 괜찮아졌죠?”


“아니요…”


“그럴 리가 없는데…”


의사님은 또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이쯤 되면 괜찮아질 법도 한데 차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 치료도 안 통하는 사람, 유니크한 사람. 의사님은 계속 ‘이런 환자는 처음이에요’라고 하셨다. ‘네, 선생님… 저도 이런 고통은 처음이에요… 어떻게 좀… 빨리… 해주세요…’ 어금니 꽉 깨물고 주사를 맞으며 속으로 샤우팅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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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일종의 ‘개안’을 한 것 같다. 세 걸음 걷다가 쉬는 걸 반복하고, 평지만 찾아다니고, 오르막길이나 계단을 오를 때 진땀 빼면서 몰랐던 그러나 알려하지 않았던 세계를 어렴풋이 체험하게 됐으니까. 울퉁불퉁 튀어나온 보도블록, 본래의 설치 목적이 사라진 지하철 엘리베이터, 손잡이 하나 없는 오르막길, 계단으로만 이어진 입구, 인도와 높이가 다른 버스, 열차와 승강장의 넓은 간격이 선명하게 보였다. 분명 다 항상 거기에 있었을 텐데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늘 거기에 있었던 불편인데 ‘나와 상관없다’는 이유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들이 ‘나와 상관있을 수도’의 영역에 들어오려 하자 비로소 보였다. 만약 휠체어를 탔다면 이 모든 게 날 좌절하게 만들었을 테니까. 외출을 한두 번 시도한 뒤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집에서만 지냈을 테니까. 언젠가 읽은 ‘우리나라에 장애인이 적어 보이는 것은 그들을 배제하고 만든 생활환경이 그들을 집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곱씹은 것도 그쯤이었다.


몇 달 아프고, 조금 고생했을 뿐이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나의 체험은 빙산의 일각이니까. 그래서 한 번 볼 것을 두 번 보고, 두 번 생각할 것을 세 번 생각하게 됐다. 왜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고속버스를 이용할 수 없는지, 시각장애인들이 물건을 살 때마다 자신의 필요가 아닌 제한된(없다고 해도 무방한)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지, 허울 좋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하는 기계조차 그들은 배제하고 진화하는지,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신의 파장과 무례한 판단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그래, 이런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지. 뭘 안다고, 얼마나 안다고. 이렇게 떠들지 말고 나부터 그들을 지우지 않으면 되는데. 그러면 되는데. 그들을 ‘그들’이라 하며 나와 선을 긋는 한심한 짓을 멈추면 되는데.


-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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