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없다고 불행한 건 아니니까

by 소소 쌤

몇 달 전, 남편이 본인과 어머님의 안경을 새로 맞추고 안경점에서 경품권을 받아왔다. 금액이 꽤 컸던 지라 경품권도 14장을 받았고, 사람들도 아직 많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말에 괜한 관심이 생겼더랬다. 1등 상품은 무려 자동차 레이였다. 최근 들어 차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참이었다. 가족 행사를 갈 때에도, 무거운 책을 짊어지고 학교를 오갈 때에도 한 번씩 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20대엔 지금보다 더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꿈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꿈꾸는 다락방”, “시크릿”과 같은 책들을 읽고 생생하게 꿈꾸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그것들이 실제로 일어났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갔을 때 통장에 1000만 원을 써서 책상 앞에 붙여뒀었고, 실제 그 정도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돈을 모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그때 그 심정으로 차가 생기길 바랐다. 지나다니는 모든 민트색 레이만 보면 저것이 곧 우리 차가 될 것이라 여겼고 레이 사진도 핸드폰에 항상 넣고 다니며 항상 바라봤다. 이 나이 먹고 차 한 대를 내 돈 주고 시원스레 사지 않고 경품을 바라고 있는 것이 한심한가 싶다가도 아직은 차를 살 수 있는 형편은 아니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몇 달이 지나고, 인스타 라이브로 진행하는 당첨자 발표를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결과는 꽝! 당첨자 이름 세 자를 보며 그렇게 부러워했다. '저 사람도 나만큼 저 차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인스타 라이브에 댓글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며 모두가 간절했을 수도 있겠지 싶었다.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점점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가 있으면 난 과연 더 행복해질까? 분명 가지고 싶고, 가지면 요긴하게 잘 쓸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남들처럼 집과 차가 생기고 재산이 점차 늘어나고 가진 것들이 많아지면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는 것일까? 나의 간절함은 과연 무엇을 위한 간절함이었을까?


요즘 아이들과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 ‘질 높은 정주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환경이 사람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가? 행복한 삶을 위한 조건으로 우린 정주환경의 어떠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이런 수업을 하던 와중에 한 아이가 심각하게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겨주었다.

“행복을 삶의 목적으로 정해두고 기준과 조건을 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정주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질 높은 정주환경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정의할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맞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수업의 내용이 혹시나 아이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한 것은 아닐까 되돌아보았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환경 조성은 우리가 분명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만 그런 환경에서 살아가지 못한다 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다. 그러한 정주환경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을 행복하지 않은 사람으로 정의할 가능성이 있다면 논의의 방향성이 완전히 잘못되었다.


더 좋고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욕심이다. 그것들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행복의 충족이라고 여기는 것은 한 사람 또는 사회를 위해 건강한 방향은 아닐 것이다. 토마스 모어가 말하는 유토피아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모두가 행복한 상상 속의 유토피아는 사유재산이 없고 직접 민주정치가 행해진다. 사람들은 문을 잠글 필요가 없을 정도로 착하다. 하루 중 6시간만 일하고 휴식하며, 강의나 토론을 통해 지식과 교양도 쌓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탐욕적으로 더 많은 소유, 더 좋은 환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량의 노동, 지식, 인간관계 속에서 먹고 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행복이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질 높은 정주환경’을 살펴볼 때 나는 아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 필요한 적정 수준의 질 높은 정주환경이 무엇이며,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를 논의의 대상으로 보자고 이야기한다. 더 좋은 것을 갖지 못했다고, 더 호화로운 정주환경에 살아가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은 절대 불행이 아니기에 ‘행복의 조건’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에 있어서는 좀 더 신중해야겠다는 생각도 공유한다. 나는 수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아이들 덕에 더 많은 진지한 고민들을 하게 된다. 이러한 순간이 차가 생기고, 집이 생기는 것보다 내 삶에 있어 소중한 기쁨이며, 이것이 진짜 내가 간절히 바란 ‘무엇’ 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차와 집이 있었으면 좋겠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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