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와 나의 케미

세 가지 수업 분위기에 대하여

by 소소 쌤

올해 나는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 두 학년의 수업을 맡고 있다. 17차시(일주일에 17개의 수업)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1학년의 경우에는 두 개의 수업을 준비하여 7반을 동일하게 진행한다. 같은 이론, 같은 예시, 같은 농담들을 7번 반복하여 말하다 보면 장점이 있다. 첫 수업보다 반복할수록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파악해 좀 더 강조할 수도 있고, 첫 반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수업 구성의 완성도도 점차 좋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반복하여 말하는 것에 지칠 때도 있는데 그 과정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들과의 ‘케미’(화학반응을 의미하는 'chemistry'의 줄임말로 미디어 속 인물들이 현실에서도 잘 어울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수업에서의 ‘조화로운 어울림’ 정도의 의미로 사용했다)이다. 수업은 나 혼자 떠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과 어떻게 소통해 나가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의 수업도 매번 다르게 완성된다. 아이들과의 ‘케미’에 따라 수업을 할 때 학급 분위기를 세 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수업 케미 최고의 반’은 수업을 시작할 때부터 다르다. 시작종이 치는 순간부터 눈빛이 반짝인다. 나는 사람의 눈빛이 실제로 반짝인다는 것을 수업 때 목격한다. 이는 성적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고 있음을 알리는 눈빛, 내 질문에 대해 생각에 잠기는 눈빛,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때의 진지한 눈빛을 볼 때 나는 신이 난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기대한 대답이 아닌 예상치 못한 창의적인 답변들도 이어지고, 때론 귀여운 농담도 나온다. 수업에서 아이들과 나는 서로에게 호의적이고 웃음을 터트리며 시간을 채워간다. 그건 수업에서의 희열이며,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50분의 소중함이다. 이런 반에서는 ‘좋은 케미’로 수업이 완성된다.


하지만 ‘반응이 없는 반’도 있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반이다. 어떻게든 생각을 이끌어 대답을 들어보겠다고 나는 목소리를 좀 더 높이고 몸짓도 더 키워본다. 그렇게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고 나면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하는 것처럼 눈을 마주 보며 말을 하고 있으나 상대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의 암담함이 있다. 분명 아이들의 성격이 반영될 때도 있기는 하다. 내향적 성향의 아이들이 모여 있는 반이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에서 보이는 작은 반응만으로도 충분한데, 때때로 몸만 교실에 와 있는 듯한 눈빛의 아이들과 수업을 하고 나면 온 몸의 기운이 쭉 빠져버린다.


하지만 이런 반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건, ‘케미가 덜거덕거리는 반’이다. 수업과 상관없는 말을 두서없이 던지거나, 자신들끼리 수군거리며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이다. 보통 이런 분위기는 중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많이 경험했다. 아이들은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워하기 때문에 수업 중 샛길로 빠지길 원하며 맥락 없는 말들을 툭툭 던졌다. 수업 진도의 여유가 있다면 상관없지만 배워야 할 이론,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 날엔 그 아이들의 태도가 수업을 이끌어나가는 것을 너무나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금요일에도 마지막 수업이 그러했다. 분명 3월 초만 해도 수업 케미 최고의 반이 될 거라 기대했던 반이었다.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일도 거침없는 아이들과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반이었다. 하지만 3월 말은 항상 그렇듯 아이들이 서로 친해지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그날 수업에서 아이들은 한참을 과제물 제출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거나, 말의 맥락을 툭 끊어내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하거나, 한쪽 귀에 에어 팟을 꽂고 있는 모습을 보이거나, 수업 도중에 작지 않은 목소리로 자신들끼리 쑥덕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나도 사람인지라 그러한 일이 하나씩 눈에 띌 때마다 집중력이 흐려졌다. 나의 기분이 고스란히 수업 때 드러났는지 수업이 끝난 후 한 아이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차, 싶었다. 열심히 잘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의 행동에 집중력을 잃어 좋은 수업을 해내지 못한 건 아닐까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미운털이 박힌 아이는 계속해서 미운 짓을 한다. 처음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담당 선생님께서 나한테 해주신 말씀이 “아이들을 예쁘게 바라보면, 아이들은 반드시 예쁜 행동을 한다.”였다. 그 말을 잊지 말자 생각했는데 나는 그 아이들을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좀 더 잘해보자, 우리 이렇게 해보자, 라며 좀 더 수업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힘내야 할 학기 초인데 너무 지쳐있어 화난 눈빛으로 아이들을 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퇴근길 내내 마음을 괴롭혔다. 그래서 다음 주 그 반에 들어갈 땐 무조건 웃는 얼굴로 그 아이들의 행동을 바라봐줄 계획이다. 스파크 터지는 케미는 또 언제 어떻게 만들어 질지 모를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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