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나요?

고등학교 사회 수업_연구 보고서 주제 정하기

by 소소 쌤

나이 서른에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앞을 알 수 없던 막막함이 있었다. 그 나이에 교사가 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하는 일이었는데, 나 스스로 그 2년 반의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을지, 그 시간이 끝난 후 교직에 설 수 있을 지도 확신할 수 없었으며 주변의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교육대학원을 다니는 과정은 꽤나 재밌었다. 오랜만에 하는 학업이기도 했고 교육학, 교육공학, 교육철학 등 수업 내용들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문제는 끝에 있었다. 바로 마지막 관문인 논문이었다. 대학 때도 졸업논문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때 정말 짧은 소논문을 써본 기억을 제외하곤 논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안일한 생각에 리포트 쓰는 것과 그리 다르겠나 생각하며 시작했었다. 써야 하는 분야는 학부 전공으로 정해져 있었기에 지도교수님도 빨리 정해졌다. 그렇게 착착 진행될 줄 알았다.


BandPhoto_2017_09_12_09_29_50.jpg 그 시기에 대만 여행을 가서 소원 천등날리기를 할때도 머리 속엔 논문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논문도 읽거나 찾아보지 않았으면서 쉬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의미한 주제를 찾고 싶기도 했다.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분야로 정해야 한다는 건 알았기에 나는 '학생들의 헌법 학습'에 관한 연구 주제를 선정했다. 사회현상에 대한 연구도 수치화된 자료를 통계 분석하는 양적 연구가 많이 진행된다. 이러한 방법이 비 수치화된 자료를 활용하는 질적 연구에 비해 주관 개입을 통제하고 분석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질적 연구를 하고 싶었고, 더 나은 연구 주제를 찾고 싶었고, 현재 내 연구 주제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에게 매번 새로운 주제를 들고 갔다. 그때마다 교수님은 정확한 답을 주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졌고 그것이 나를 더욱 막막하게 했다.


주제를 정하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영영 논문을 끝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교수와의 면담 후 마시지도 못하는 술(그래도 좀 맛있는 걸 먹어보겠다고 라즈베리 크루저로 골랐었다)과 매운 볶음라면을 사들고 집에 가 혼자 청승을 떨었다. 결국 반도 못 마시고 게워내며, 이 과정을 기간 내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주제에 대한 막막함으로 펑펑 울었다. 결국 나는 원래 정했던 주제로 돌아왔고, 분석 틀을 새로 만들어 연구를 진행했다. 진행 과정도 물론 쉽진 않았지만 이 주제를 정할 때는 정말 머리가 터질듯 힘들었다. 다행히 과정들을 무사히 마치고 그 모든 시간이 우수학술연구상의 성과로 돌아왔을 때 '그래, 잘 견뎠어.' 하는 만족감이 더 크게 돌아오긴 했었다.


laptop-3087585_1920.jpg 픽사베이


나는 요즘 아이들과 수업시간에 연구 보고서를 쓰고 있다. 각자 자신의 관심사나 희망 전공 분야에 대한 연구 주제를 자유롭게 한 가지 정하여 연구 보고서를 작성해보는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나의 과거 경험을 까마득하게 잊고 주제 선정의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았다는 것이다. 나는 한 주정도 마인드맵으로 아이들의 관심사에 대한 키워드만 파악하면 그다음 한 주만에 뚝딱 연구 주제문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며 키워드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막막함이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다. 한 명 한 명 시간을 오래 들여 피드백을 하다 보니 나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나의 그 대학원 마지막 관문의 시기가 떠오른 것이다. 아이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좀 더 깊게 알아가는 즐거운 연구를 하고자 했는데 나는 그 연구 주제를 정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막막함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내쉬고,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고, 수업을 또다시 해나가보려 한다. 이 과정이 끝났을 때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여 결론을 낸 하나의 완성된 연구 보고서를 내 손에 들었을 때의 만족감을 아이들과 나눌 학기말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이 과정은 분명 우리의 삶에 유의미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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