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계속 써나가 보리라
오랜만에 치과를 찾았다. 10년 전쯤 치과 검진에서 오른쪽 사랑니가 썩어가고 있으니 관리를 못할 거면 뽑으라 했다. 그리고 이번 검진 때 사랑니가 검게 변해가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더 늦추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한번 더 주저했다. 다른 치과에선 사랑니가 신경을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어 대학병원을 가라고 권고했고, 왼쪽 사랑니를 뽑았을 때의 아픔과 불편함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게, 마음의 준비가 다 되지 않은 채로 ‘할게요!’라고 툭 말을 뱉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은 일상 속 어떤 순간과 다르지 않은 보통의 순간이다. 하지만 그 ‘할게요!’를 할 때까지 무려 10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그 말 한마디가 참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즉흥적이었고 그냥 툭 하고 뱉은 말 중 하나였지만, 생각해보면 주말에 일정이 없다는 사실, 자신 있는 의사의 태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생각 등 다양한 요소들이 내 안에서 뒤엉켜 한마디 말을 만든 것 같기도 하다.
발치 내내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이미 신경을 지나고 있으니 위험하다는 말도 여러 차례 들었으며 신경 마비 또는 과다 출혈과 같은 무서운 안내를 듣고 수술이 시작된 것도 한몫했다. 내 몸에 하는 처치가 내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입을 있는 힘껏 벌리고 있다는 것, 물을 빨아들이는 기계 소리와 잇몸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기의 촉감, 이 모든 것들이 싫었다. 마취 덕에 아프진 않았다. 우지끈하는 느낌이 여러 차례. 뭔가 잘 안된다는 느낌에 불안감이 스칠 때쯤. 윗니가 끝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아랫니가 끝났다.
다음 날, 학교에서 나는 사랑니 발치 무용담을 털어놓았다. 그러다 사랑니를 뽑은 여러 사람의 경험담을 듣게 됐다. 의사가 옆 어금니를 지지대 삼으며 뽑아 금이 간 사연, 절개하여 다 부셔서 이를 뽑은 사연, 1시간 가까이 수술이 이어져 입 주변이 다 까진 사연, 사랑니를 뽑고 바로 삼겹살을 먹으러 간 사연 등. 모두 자신의 이야기였다.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내 마음이 사랑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내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글에 그다지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만 쓰는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 것은 확실했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밑줄 쳐준 누군가를 보는 순간의 기쁨이 그 무엇보다 컸다. 내가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고, 현실을 핑계로 계속해서 쓰고 싶은 나의 마음을 회피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저 깊은 곳에 숨겨두고 현실을 탓하며 글을 쓰지 않았다. 그저 언젠가, 여유가 되면 그땐 꼭 글을 쓰리라,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서른 중반을 넘어섰다. 내 마음은 사랑니처럼 서서히 검게 빛을 잃어가고 있는 걸 알면서도 무서워 어쩌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1월에 “해보자!”하는 그 보통의 순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물론 지금 나의 글이 어설프고 남들 앞에 내세우기에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해보자!’의 순간 후에 매주 2편 씩의 짧은 글을 써 나갈 수 있었다. 두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이 무서웠고, 매주 마감까지 글을 써야 한다는 자발적 스트레스에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래, 잘 해냈다!’라는 뿌듯함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 만족할 만한 글이 아니어도 나는 썩어가는 내 마음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새살을 키우고 있다. 그건 “해보자!” 결심한 순간과 실제 글을 쓴 시간들의 합이다. 아직은 새살이 자라는 사랑니 자리가 허전하고 어색하다. 그래도 나는 이 말을 내뱉은 것을 두고두고 다행이라 여길 것이다.
나는 글을 쓰고 싶은 내 마음을 더 이상 썩어가게 두지 않으려 한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단 한 줄이라도 써 보는 것. 이미 “해보자!”라는 그 순간을 맞이했기에 계속 써 나가면 된다. 내 시간이, 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내가 마흔이 되는 그 날에는 나의 소중한 푸른 책 한 권이 내 손안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건 순전히 “해보자!” 했던 2021년 1월의 그 보통의 순간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