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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소중한 당신의 한 표

재보궐선거가 다가온다.

by 소소 쌤

나는 여러 회사에서 근무를 한 경험이 있다. 내가 근무했던 한 회사의 지점장은 권위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등장하면 모든 근무자들이 일을 하던 도중에도 벌떡 일어나 인사하기를 바랐다. 또한 민원인을 가장하여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점검하는 일을 수시로 즐겼다. 그리고선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며 직원을 질책했다.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라며 민원인 앞에서 직원을 깎아내리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상사였다.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그 회사에서 잘리면 세상이 끝난다고 여겼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리를 지르는 일이 두려웠고 이 곳에 어느 누구도 나를 보호해줄 수 없다 여겼다. 그 시절 회사는 나에게 벌어진 악어 입과 같은 이미지였다. 입 안에서 민원인들과 지점장이 나를 잡아먹으려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고 나는 악어 코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두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더 과장된 감정 상태였을지 모르나 그 시절 나는 회사가 무서웠다. 그 회사를 우여곡절 끝에 퇴사하고 두세 개의 회사를 더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을 겪고 나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는 어떤 회사도, 직업도 내 세상의 끝은 아니라는 사실.

그곳에서 견디는 것이 무의미하다 생각해서 그 회사를 나온다 해도 그다음의 나의 삶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훨씬 더 좋은 삶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는 말할 수 있는 회사의 분위기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

여러 회사를 다니면서 권위적인 인간상과 민주적인 인간상을 모두 겪었다. 권위적인 상사가 있는 곳에서는 구성원의 말 한마디가 왜곡되며, 괜한 화를 불러일으키며, 맞서 싸워도 의미 없는 소모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점차 지쳐가고, 말을 꺼리게 되고, 참여를 포기하며, 생각하지 않는 조직이 되어갔다. 이런 권위적 조직이 내가 경험한 것의 7할 정도를 차지한다.

하지만 나머지 3할 정도는 달랐다. 나이 어린 직원의 말을 듣고자 노력하는 상사가 있는 조직도 있었다. 그때 느낀 것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상대가 들어줄 것이란 기대, 그것이 의사결정의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기대 자체로 회사생활은 할 만했다. 그러한 곳에선 작은 의견이라도 말해볼 수 있었으며 그것이 그 조직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됨을 느꼈다. 나는 참여란 그런 것이란 생각한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선거장에 갈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모두 생계에 바쁜 속에서도 국민으로서 선거라는 과정에 참여함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그것은 구구절절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늘어놓진 못하지만 나의 한 표를 통해 이 사회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장을 선거용지에 찍을 때면 나는 뭔가 묵직한 느낌을 받는다. 때때로 이 도장을 찍을 때 “두둥”이라던가, “소중한 당신의 한 표가 행사되었습니다”와 같은 음향효과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 묵직한 참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가 귀 기울여 듣고 있으리라는 기대다. 국민의 소리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 그것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할지라도 진심으로 듣고 있으라는 믿음. 그것이 없다면 정치적 무관심, 정치적 냉소주의가 발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우리 사회를 살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참여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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