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두곡 해수욕장에서
여행을 좋아한다. 무엇이 좋다 싫다가 그리 분명하지 않은 모호한 인간이지만 여행은 분명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수업 때 종종 아이들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느 공간으로 가건 아이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다양한 여행을 경험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남해에서의 두 번째 날이었다. 유독 더웠던 여름이었다. 서울에서도 엄청난 무더위라고 연일 뉴스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더 남쪽으로 가는 우리를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 그 더위에 남편과 나는 셀프 웨딩 사진을 남기고자 나름 멋을 부렸다. 나는 빨간 조화 부케를 손에 들고 차에 올라타며 설렘을 느꼈다.
목적지인 B급 상점으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나는 계속해서 감탄했다. 한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남해는 정말 아름다웠다. 초록색 다랭이논이 층층이 쌓이고 그 능선을 따라 하얀 구름이 몽글거리고, 저 멀리 푸르른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조화로운 풍경은 편안함을 주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는데 그 책에서도 그리스의 아름다운 바다를 묘사하는 문구가 나온다. 그 문구처럼 내가 이 풍경을 묘사할 문장력이 없음에 안타까울 만큼 남해의 바다는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바다, 가을의 달콤함, 빛으로 멱을 감은 섬들, 그리스의 영원히 벗은 몸에 옷을 입히는 투명한 이슬비. 죽기 전에 에게 해를 항해하는 영광을 누리는 사람들은 행복하다.(그리스인 조르바 p.38)
B급 상점을 들렸다가 길현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문득 한 해수욕장에서 우린 잠시 멈췄다. 인적이 드문 해수욕장은 차에 앉아 반짝이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만 봐도 좋은 고요한 공간이었다. 사진을 한 장 남기고 싶어 삼각대를 세워두고 저 멀리 뛰어가 어색한 손동작으로 리모컨을 눌렀다. 셀프로 찍는 사진은 더 자연스러울 거라 생각했지만 어설프고 어색했다. 여름 바다 바람에 치마가 허벅지까지 올라와 정신없이 치마를 잡아야 했지만 내내 행복감이 몰려왔다. 풍경이 기분을 만들었다.
사진을 확인하는데 경운기 짐칸에 앉아 있던 아저씨 한 분이 다가왔다. 워낙 사람을 경계하는 편인 나는 무뚝뚝해 보이는 현지인에게 긴장했다. 아저씨가 비닐 랩으로 씌워져 있는 하얀 덩어리를 건넸다.
"서울에서 왔나 보네. 먹어봐, 맛있어."
아저씨는 짧은 말을 남기고 시원스레 뒤돌아 경운기에 올라타 어딘가를 향했다. 우리가 자신이 건넨 것을 먹는지, 그 맛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건넨 그 마음만으로 충분한 듯 경쾌하게 자리를 떠났다. 손 위에 놓은 하얀 덩어리는 따뜻했다. 한참 바라보다가 비닐 랩을 열어보니 하얀 절편 두 덩이가 놓여있었다. 의심 많은 나는 평소 같았으면 먹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한참을 그 떡을 두고 먹을 것인가를 논의했다. 남들은 소심하다 할지 모르나 둘 다 이상한 데서 신중했다.
여행지에서만 가능한 아주 작은 모험심의 발현으로 우린 크게 한 입 베어 먹었다.(실제로는 그렇게 큰 입이 아니었을지도) 그것은 갓 쩌낸듯한, 쫄깃하고 맛있는 절편이었다. 배가 고팠던 것인지 그 떡을 우린 참 맛있게도 먹었다. 그리곤 기분 좋게 웃었다.
그 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남해 바닷가는 따뜻한 떡 같은 촉감으로 남을 수 있었다. 불현듯 서울에서 온 낯선 이들에게 본인의 따뜻한 간식을 나눠주고 싶었던 한 아저씨 덕분에 그 떡을 한 입 베어 먹은 우리는 운이 좋게도 남해를 그 이야기로 추억한다. 그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우연은 일상의 우연과 달리 더욱 특별하게 기억되곤 한다.
나쁘고 고된 일들도 수 없이 겪으며 삶을 살아가지만 때때로 여행은 삶에서 그 날의 절편 한 덩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연한 것, 그리고 따뜻한 것,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의 행복감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수업에서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이 현재 혹은 미래에 경험하는 수많은 여행들이 삶을 더욱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