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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울’이라는 선물

생일날본 영화 "쏘울"

by 소소 쌤

얼마 전 생일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일 축하를 받는 일이 어색하고 부끄러워 일부러 메신저에 뜨는 생일 알람을 모두 삭제해두었다. 생일을 조용히 지나가고 싶은 마음은 꽤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달라졌지만.


학급에서 중요한 행사 중 하나는 학급 친구들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다. 1인 1 역할을 정할 때 ‘생일 담당’이 있을 정도다. 아이들은 서프라이즈를 좋아했고, 항상 생일 담당 아이들은 나에게 다가와 종례 때 시간을 좀 끌어달라고 속삭인다. 그리곤 슬며시 몇몇이 밖으로 나가 초코파이를 쌓아 올려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들어온다. 그리고 고깔모자를 쓴 생일 주인공을 중심으로 사진 한 장을 찍고 초코파이를 나누어 먹으면 생일 이벤트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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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이런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초코파이 생일 케이크는 여전히 학교에서 인기다. 아이들에게 생일은 특별했고 생일을 챙겨주는 사이가 정말 친한 사이라고 생각한다. 혹시나 생일을 챙기지 않으면 그건 서로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거라 생각하던 시절이다. 나 또한 그랬다. 고등학교 1학년 생일, 먹고살기 힘들었던 가족들이 내 생일을 잊은 날, 나는 축하받고 싶었던 모든 이들에게 축하받지 못한 외로운 생일을 보냈고 그 이후로 ‘생일엔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라는 이상한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 20대를 보냈다. 생일을 조용하게 지나가고 싶다고 겉으로 말했지만 속내는 시끌벅적한 축하도 받고 싶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조용히 맞이하는 생일을 원하는 이유가 바뀌면서 그 이후에 맞이한 생일들이 참 특별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바삐 사는 삶의 무게를 알게 된 이후로 서로의 생일을 챙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생일이 별 큰일이 아니라는 진짜 속마음도 생겨났다.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이 바쁘게 사는 와중에 내 생일 날을 챙겨 연락을 주는 것만으로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더불어 그동안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못했던 이들에게서 연락이 온다면 그것 또한 반가운 일이었다. 생일이란 이유로 ‘잘 지내지?’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좋았고 여전히 나를 생각해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올해도 그랬다. 네 생일은 바빠도 꼭 챙기겠다 말하는 마음, 밥 한 끼 좋은 걸 사주고 싶은 마음, 마음 따뜻한 편지를 넣어 책을 보내준 마음, 그 날 하루 내 기분을 계속해서 살피는 마음들을 전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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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쏘울”에 대해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그 생일날, 나는 영화 “쏘울”을 봤다. 재즈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열정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공연을 해내는 영화, 그 정도로 생각했지만 내 생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영화는 흘러갔다. 시끌벅적한 뉴욕 한 골목에서 빛을 온몸으로 받고 새소리를 들으며 나뭇잎을 손에 쥐는 영화의 순간에서 나는 눈물이 났다. 그 영화를 보며 매일 건너는 한강 다리 위의 풍경이 다르게 느껴지던 순간, 집을 나설 때 새벽 공기 냄새를 맡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런 순간들을 느낄 줄 알게 되는 것이 삶을 살아갈 준비라고 말하며 그래서 매 순간 충분히 즐기라고 말해주는 영화가 바로 “쏘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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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


몇십 년 전, 생일날 나는 스파크를 얻어 영혼을 가지고 이 지구에 왔다.(영화를 보면 이 스파크를 얻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생일날에 사랑받고 싶어 하고 쉽게 상처 받으며 나는 내 영혼에 상처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생일에 나에게 인사를 건네주는 그들의 마음에 기뻐하고 내가 지금 누리는 시간 그 자체를 만끽하는 것이었다. 영화 덕에 나는 올해 내 생일날, 나에게 건네는 사람들의 다정한 말들을 온전히 따뜻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나의 영혼이 나의 육체를 만나 이 지구에 온 반가운 날, 앞으로의 생일날엔 영화 “쏘울”에 나오는 재즈를 들으며 이를 잊지 말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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