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춘언니가 나에게 보낸 카톡 메시지였다. 순간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좋아하는 노래나 좋아하는 책을 물으면 한참을 고민해야 하는 성향이기에 이런 질문은 나에게 쉽지 않다. 춘언니는 나에게 춘천의 독립서점에서 사연을 모집하고 있는데, 춘천에 대한 추억이 담긴 노래를 내가 사연을 적어 보내보면 좋을것 같다고 했다. 나는 구글 사진에서 ‘춘천’을 검색하고 찬찬히 3년 간의 시간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문득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언니와 함께 갔던 ‘The Counterfeit 비틀즈 공연’. 그 공연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를 틀어두고 나는 춘천의 시간을 찬찬히 거슬러 올라갔다.
마실북스 인스타그램
내가 춘천이란 낯선 도시에서 삶을 시작할 때, 그곳에 아는 이가 한 명 있다는 사실은 나를 안심시켰다. 언니와 나는 동화작가 학교에서 만났다. ‘동화’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이 첫날 저마다 여기 온 이유를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언니는 동화에 대해 진심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먼 춘천에서도 서울로 매주 오는 것을 매우 즐겁게 여겼다. 그곳에서 각자 써온 동화를 합평하면서도 사실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을 이유로 이주한 곳이 춘천이었고, 동화작가 학교에서 만난 짧은 인연으로 언니가 나를 반겨주었다. 이삿짐도 없이 트렁크에 급한 짐만 싣고 월세로 구한 집에 도착하여 완전히 혼자가 된 첫날 밤에 나는 외롭고 무서웠다. 이 낯선 집도 싫고, 이 연고없는 도시로 괜히 왔나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그 시기쯤 언니가 내게 보여준 춘천은 따뜻했다. 언니는 내게 공지천을 끼고 있는 ‘KT&G 상상마당’이란 곳을 소개해주었다. 김수근 건축가가 지은 독특한 건물인 그곳은 공연과 전시들을 하는 춘천의 문화예술 공간이다. 나는 그곳에서 춘천의 첫인상을 만들며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저녁으로 우린 당연하다는듯 춘천 닭갈비를 먹었다. 그 뒤로 만날때마다 언니는 낯선 곳에 던져진 나에게 치약 같은 생필품이나 방울토마토 같은 먹을 것들이 담긴 쇼핑백을 건네곤 했다. 언니는 나와 달리 마음을 표현할 줄 아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KT&G 상상마당
언니와 나는 종종 강원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났다. 캠퍼스는 '연적지'라는 호수를 품고 있었고 계절 별로 꽃과 나무가 예뻤다. 그곳에서 나는 언니와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언니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언니를 통해 나는 많은 작가와 책을 알게 되었고 동화를 쓰고 있는 언니 덕에 동화에 대한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기까지 생각만 하며 수많은 시간을 허비한 것에 비해 차곡차곡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글로 적어온 언니가 세상에 남긴 것들을 나는 부러워해왔다.
What is on your playlist?
다시 언니의 질문으로 돌아와, 나는 ‘The Counterfeit 비틀즈 공연’, 그 공연에서 흘러나왔던 노래를 ‘춘천하면 떠오르는 노래’로 꼽았다. ‘비틀즈보다 더 비틀즈 같은 최고의 헌정밴드’란 말에 언니와 내가 좋아하던 '상상마당'에서, 함께 봤던 공연이다. 공연에서는 비틀즈를 닮은, 검은 옷의 네 명의 영국인이 신나게 연주를 했다. 나는 비틀즈의 노래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는 많은 노래들이 연주되었다. 그때 들었던 음악 중 나는 이 노래를 여전히 최고로 꼽는다.
The Counterfeit 비틀즈 공연
I Want to Hold Your Hand(The Beatles)
‘딩디딩 띵’ 전자 기타음으로 시작하는 경쾌한 음악이다. 영화 조조래빗(감독:타이카 와이티티) OST로 쓰였던 ‘Komm gib mir deine hand'라는 제목의 독일어 버전 또한 들어보길 추천한다. 외로운 순간에 내 손을 잡아주었던 언니가 그리운 춘천에 지금도 살고 있어 나와 춘천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있다. 봄날이 다가오면 나는 춘(春)언니를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래서 봄이 시작하는 3월, 나에게 봄을 닮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써보았다. 자연스레 떠오른 비틀즈의 노래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