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백반기행’을보며
요즘 남편과 밥을 먹을 때 넷플릭스에서 하는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 국내 곳곳을 다니며 허영만 만화가가 여러 식당을 방문하여 음식을 맛보고 게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나는 식도락에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항상 먹던 음식만 먹는다면, 남편은 음식에 대해 알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도 이런 성향은 드러난다. 내가 재료를 별 고민 없이 무조건 싸거나, 예쁘게 생겼거나, 가까운 데 위치한 걸 고르는 반면에 남편은 성분 함량, 제조회사 등을 확인하고 오래도록 고민하는 사람이다. 난 음식을 먹을 때, 재료나 메뉴에 대해서도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는 반면 남편은 음식의 유래나 조리 방법에도 호기심을 보인다. 특히나 자신이 좋아하는 술에 대해서는 밤을 새우도록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여튼 우리는 이 프로를 보며 요즘 음식 관련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다른 음식 프로그램보다 내가 이 프로그램이 좋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직 가보지 못한 어딘가의 소박한 식당들을 보여주고, 내가 다녀온 어딘가를 추억하게 하는 음식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여행은 항상 맛있는 음식과 함께 기억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볼 때면 여행하는 기분이 된다. 여기 나오는 식당들에는 소박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식당 주인장들이 많이 나온다. 반찬 하나 만드는 것도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들어간다는 걸 깨닫고 나서 한 상 가득 차려진 밑반찬을 보니, 그게 그렇게 대단해 보일 수가 없다. 때대로 주인장들의 나이 또한 놀랍다. 70세, 80세에도 여전히 활기차게 손수 음식을 만들어 손님상을 내주신다. 남편과 나는 젊게 살려면 식당을 해야 하나 보다고 농담 삼아 말했지만 사실 꾸준히 몸을 움직이는데 비결이 있을 것이다. 한 장소에서 우직하게 식당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첫 번째 재미이다.
또 하나는 게스트와의 대화이다. 대부분 가수 또는 배우가 많지만 나이, 직업이 다양한 게스트들이 나와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한다. 나처럼 음식에 관심이 없는 누군가도 있고, 음식에 일가견이 있는 누군가도 있다. 허영만 만화가는 누구와도 즐겁게 대화하고 음식을 맛보며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말을 건네는 노련함 또한 좋다. 매 회를 보다 보니 편안한 대화 상대와 그렇지 않은 상대가 누구인지도 알 것만 같다. 때때로 대화의 내용에서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미혼의 게스트가 나올 때 그러하다. ‘결혼은 했느냐’, ‘왜 못했느냐’, ‘그래서 못한 것 아니냐’와 같은 질문들. 내 나이 또래의 미혼들이 어딜 가나 듣는 참 불편한 질문들을 거리낌 없이 한다. 나와 다른 세대를 살아온 그들에게 결혼이 가지는 의미가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현세대에게 그러한 질문은 지극히 사적 영역이며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음식에 대한 프로그램이므로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다. 가끔 게스트들이 자신의 음식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할 때 얼굴에 퍼지는 묘한 행복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단 음식은 싫다 말하는 솔직함과 아재 특유의 농담을 건네는 중후한 목소리, 빨간 테의 안경이나 노란 바지를 소화하는 패션 감각, 편견 없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편안함들이 이 프로그램을 100회 가까이 이끌어온 허영만 만화가만의 매력일 것이다. 그렇기에 남편과 나는 매주 올라오는 백반기행을 기다리고, 이를 보며 한 끼 식사를 같이 하고, 거기에 나온 재료나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의 배경 속에서 먹고, 걷고, 대화하는 백반기행처럼 매일 잘 먹고, 느리게 걷고, 누군가와 좋은 대화를 나누며 또 하루를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