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하고 가장 좋은 점은 오전 9시에 맞춰 이현우의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익숙한 시그널 음악이 들려오고 DJ 이현우가 변함없는 목소리로 첫 곡을 소개한다. 그때쯤이 집에 햇살이 가장 따뜻하게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가능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물론 해야할 일 리스트는 스케줄러에 가득하지만 잠시 내려두고 잠깐이라도 여유를 즐겨보려고 노력한다.
학기 중에 나는 도대체 시간을 어떻게 쪼개며 살아왔을까. 새삼 돌이켜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그 시간 속 나는 어릴 적 테트리스를 할 때의 마음이 된다. 내려오는 수많은 블록들을 제자리에 잘 맞추어 그 과제를 수행하지 않으면 어느새 할 일들은 제멋대로 쌓여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빨리 판단하고, 빨리 해치워야 한다. 블록이 내려오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므로 지체해서는 안 된다. 또 닥치면 해낼 일이지만 참 몸도 마음도 지쳐갈 수밖에 없는 일상이었다. 모든 직장 생활이,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그 시간 동안 나는 또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여러 핑계들이 가득했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더 큰 핑계는 나의 얕음 때문이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읽는다는 생각을 하면, 자신 있게 글을 적어 내려가기가 어렵다. 내가 습관적으로 생각이 깊이 나아가는 걸 막는 것 같기도 하다. 나름의 살아온 방식이다. 깊게 생각할수록 우울해졌다. 답이 찾아지지 않기에 단순화 시키는 데 집중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다 보면 글은 언제나 착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바람직한 결말, 누군가에게 읽혀도 괜찮을 걸러낸 이야기들. 그게 종종 솔직하지 않은 나 자신같이 느껴져 싫었다.
얼마 전 눈이 조용히 내려, 온 세상을 고요하게 만들던 아침에도 나는 라디오를 틀었다. 온 세상을 조용하게, 하얗게, 천천히 만들어가는 그 속도와 색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 눈이 잦아들고 사람들의 빗자루질 소리가 들린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풍경 속에 사람이 움직인다. 나는 그 자연과 그 안에 사람을 표현하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다. 내가 가진 다른 재주가 없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표현이 글인 것은 분명하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되고, 나는 다시 새로운 다짐을 한다. 매주 한 편의 글. 나를 솔직히 내보일 수 있는 글. 아마도 또 학기가 시작되면 시간에 휩쓸려 테트리스에서 게임 오버가 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라도, 그 테트리스 블록 사이사이 빈 공간을 잘 활용하여 글을 써나가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