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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다

by 소소 쌤

문득 세상일들이 감탄스러운 순간이 있다.


지난 주말 부모님 댁에서 도배와 장판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걸 본 순간. 오래된 벽지를 벗겨낸 곳엔 세월이 느껴지는 벽이 날 것의 속살을 드러낸다. 풀을 바른 하얀 벽지를 얹어 그 위에 슥슥 마른 붓질을 하면 말끔한 새 집이 된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붓을 놀리는 사장님의 손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교통사고와 관련한 일들을 처리하는 순간. 아버지 손에 꽂혀있는 끝이 동그란 철심을 보며 골절된 뼈를 절개도 하지 않고 철심을 박아 치료하는 의료기술에 감탄한다. 교통사고를 둘러싼 보험 체계를 인터넷에 검색하면서 머리가 아파지다가 문득,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는 법적 제도에 감탄한다.

‘이걸 누가 만들었을까.’

그러고 보면,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스마트폰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와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전 세계를 하나로 묶은 인터넷은 어떻게 가능해진 것이며 거대한 비행기는 어떻게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나는 걸까.


모두 아는 그 깨달음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해낸 일이라는 사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엄청난 속도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했다”로 교과서는 간단히 설명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한 것이 바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실현시켜왔다. 감탄스럽지 않은가. 사람의 지나친 자만심이 왜 역사 속에서 나타났는지 이해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 자만심이 현재에는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런데 엄청난 일들을 해낸 것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에 자랑스럽다가 다른 생각이 밀려온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낸 거겠지.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직업인으로서 해나가야 할 일들의 무게를 느끼기도 했겠지. 그들은 어떻게 각자의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었을까.


최근 읽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라는 책 속에서는 건축의 과정을 그려낸다. 책은 국립현대도서관의 건축 설계 경연을 위해 준비를 하는 설계사무소 직원들의 여름 별장 속 하루하루를 잔잔하게 그려낸다. 사람의 동선, 사람이 공간에서 느낄 감정, 카페테리아나 사무실의 위치, 책에 쌓이는 먼지, 도서관 속 햇빛의 양과 공기의 방향, 의자의 모양과 감촉 등 수많은 것들을 그들은 고민한다. 그들은 건축가이며, 사람들은 실수 없이 완벽한 건축을 해낼 것을 그들에게 기대할 것이다. 특별한 고민 없이 사용되는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공간들이 사실은 세심한 배려가 담긴 '사람'의 창조물인 것이다.(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건축 또한 사람이 해낸 믿기지 않은 결과물 중 하나이다. 그건 한 사람의 결과물이 아니며 과거에 살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식과 지혜가 축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도배장, 의사, 법조인, 건축가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실수는 크고 작은 피해를 개인 또는 사회에 미칠 수 있기에 완벽하게 일을 해내길 요구받는다. 역사 속 ‘사람’이 이뤄낸 놀라운 업적처럼 지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직업인들도 그렇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직업은 거의 없다. 그러나 완벽은 가능할까.


나도 사회 속 직업인으로서 그러한 무게감을 느낄 때가 있다. 교육 분야에서 나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가. 내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한 해 한 해 시간이 흘러갈수록 내가 하는 일들이 무겁고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보다 먼저 세상을 살며 놀라운 일들을 해냈던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일들을 잘 해낼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이 역사 속에서 해냈던 그 놀라운 결과물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내 분야에서 꽤 괜찮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 내가 하는 무언가가 아이들에게 또는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


너무 거대하게 생각이 흘러가버렸지만 ‘사람’이 해낸 세상의 그 모든 일들이 갑자기 거대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사람’들이 해낸 것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놀라고 감탄스러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일들이 모두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그 사람은 너와 같고 나와 같은 ‘사람’이다. 그 사람들에 감탄하기도 하고 용기도 얻으며, 나도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여야겠지. 머리는 아는데 몸도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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