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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이 견뎌낼 여름

by 소소 쌤

덥다. 여름날 더운 건 ‘시간이 지나면 나이가 든다.’처럼 당연하게 경험해 온 일이었다.

올여름도 언제나 그렇듯 습한 더위가 시작되었다.

따갑기도 하고 뜨겁기도 하다.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고 어질 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뿌연 하늘이 아니라 다행이다. 구름이 뭉게뭉게 평화롭게 떠있다.


뜨거운 여름날 길거리를 걸으면서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독립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한 여자가 초록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공원 의자에 앉아있다. 나뭇잎으로 뜨거운 해를 겨우 가린 작은 그늘 아래에서 여자는 줄줄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낸다. 줄무늬 반팔 티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은 그 여자는 지치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생명력 넘치는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댄다. 여자는 아이스크림을 시원하게 베어 먹으며 잠시 숨을 고른다.

그 영화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딱 그 장면만이 생생하다. 그 장면은 내가 지금 살아내는 이 여름의 온도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뜨거운 여름날, 진한 초록의 생명력이 우주를 채우는 이 시기에 나는 지친 그 여자의 심정이 된다. 우리의 몸이 여름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다.


이 여름날, 교통사고로 손가락이 골절된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있다. 손가락을 쓸 수 없다는 건 옷을 입거나, 머리를 감거나, 반찬 뚜껑을 열거나, 생수 병을 따는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들을 그렇지 않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소화불량을 겪고, 누군가는 장염으로 고생하며, 누군가는 혓바늘로 아파하고, 누군가는 코로나 백신을 맞고 근육통을 겪는 이 상황들을 이 여름 속에서 나는 지켜보고 있다.


별거 아닌 일들 일수도 있지만 동시에 벌어지는 이 사건들 속에서 나는 부지런히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 이 시간 속에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크고 작은 몸의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을 견뎌내게 하는 주위의 보살핌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고통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시간을 살아내면 몸에는 나이가 들고, 나이가 들면 크고 작은 고통의 가능성도 늘어난다. 모든 것들이 뜨겁게 작열하며 생명력을 불태우는 이 여름날에 크고 작은 고통 속에서 우리의 생명력도 고통을 이기고 살아내려 애쓰고 있다.


가족들을 챙기고 나의 집에 돌아와 푹신한 매트리스에 누워 에어컨 아래에서 푹 자고 일어난다. 잠시 유튜브를 보고 웃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느지막이 몸을 일으켜 초콜릿을 혀로 녹이며 아이스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살 것 같다.


자잘하게 아프다 괜찮아지다가를 반복하며 이 시간을 우리의 몸이 견뎌내고 있다. 이 덥고 징한 여름날은 지나갈 것이다. 큰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 그리고 큰 고통을 막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 여름, 우리 힘을 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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