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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프렌즈 덕후의 고백

내가 프렌즈를 좋아하는 이유

by 소소 쌤

*미드 프렌즈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무언가 새로운 것을 볼까 싶다가도 밥을 먹으며 보는 건 미드 프렌즈(1994~2004)이다. 남편이 그렇게 맨날 보는 걸 또 보는데도 재밌냐고, 이상하다고 할 정도로 나에겐 영원히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최애 미드이다.


프렌즈1.png 프렌즈 포스터


프렌즈와의 인연은 꽤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중학교 시절 미국에서 살다 온 친구가 프렌즈가 재밌다고 나에게 얘기했었다. 그땐 아마 시즌 초반이었고 나는 전혀 그 재미를 알 수 없었다. 어른들의 세계 속 이해할 수 없는 농담이 가득했다. 한편으로 영미 문화를 이해하고 영어를 알아듣는 친구의 모습이 멋있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난 영어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까지 내 발목을 잡은 영어 공포증을 해결해 보겠다고 20대 중반에 외국에 나가 있을 때 다시 프렌즈를 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도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열성적으로 봤던 건 그때부터이다. 영어 공부가 된다는 말에 시즌 1부터 시즌 10까지 보고 또 봤다. 그 시절 프렌즈에는 우리의 20대, 젊은 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젊은 날의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갈등했고, 방황했고, 불안했고, 여전히 실수투성이이지만 자존심은 굽히고 싶지 않았던 나의 모습. 그래서 묘하게 위로받았다. 그 드라마 안에는 성장통을 겪은 이후 꽤 괜찮은 서른 중반의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시즌 10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그것이 희망이 되었다.


모든 것에 쉽게 질려버리는 내가 최근 다시 프렌즈를 보면서 또 미소 짓고 있다. 30대에 맞이한 프렌즈는 또 다른 느낌이다. 나는 그 여섯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모니카, 챈들러, 레이첼, 로스, 피비, 조이.

프렌즈4.png 프렌즈의 한 장면

오래전부터 챈들러와 모니카를 좋아했다. 어딘가 부족함을 가지고 있는 우리 주위에 평범한 인물들이다. 인기도 없고 어릴 적 상처(챈들러는 부모로부터, 모니카는 외모로부터 다양한 상처를 가지고 있다.)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 둘. 부족하지만 이 둘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다. 이 둘이 좋은 이유는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서로의 연인에 대해 놀려도,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상처에 대해 말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타인을 보살피는 역할까지 해낸다. 모니카가 항상 맛있는 음식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역할을 해내는 모습, 그리고 챈들러가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조이를 챙기는 모습이 그러하다. 그 둘이 소중한 것을 소중히 여기며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그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도 모니카와 챈들러 같은 그런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했었다.


프렌즈3.png 프렌즈의 한 장면

그에 비해 로스와 레이첼은 달랐다. 레이첼은 어릴 때부터 눈에 띄게 예쁘고 인기도 많았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외모와 재력으로 부족함 없이 자라 자신감이 넘친다. 로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자존감이 높은 모습을 보여준다. 공부도 노력한 만큼 스스로 성취해왔고 부모도 그렇게 인정해 주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친구들은 놀려도 로스는 대학교수를 하며 자부심을 가진다. 이 둘의 사랑을 응원했지만 시즌 1부터 시즌 10까지 끊임없이 둘의 사랑은 좌절하고 시작하기를 반복한다. 어릴 적 나는 그것을 답답해하며 그것은 단순히 ‘오해’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과정을 지켜보는데 그것은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지고 싶지 않고 내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그들은 매 순간 필요했고, 그건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매번 엇갈려 버릴 수밖에 없다고 드라마는 보여준 것이 아닐까.

프렌즈2.png 프렌즈의 한 장면

멀리서 보면 보이는 것들이다. 조이와 피비는 독특하고 유쾌한 캐릭터다. 20대 초반 그들이 얼마나 힘든 시기를 겪어냈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성장해 내는가. 가난했던 시기를 지나 안정을 찾아가는 그들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솔직함이다. 때로 그 솔직함이 타인은 당황하게 하고, 때로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보면 그것만큼 관계에서 소중한 것이 없다고 느껴진다. 여섯 명의 관계는 그 솔직함 속에 서로를 이해해가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프렌즈는 영어를 배우던 20대, 그 시절 나의 열정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지금 그들의 시즌 10, 그 나이대의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다. 나의 프렌즈가 끝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20년 뒤에도 나는 이 프렌즈를 보고 있을 것만 같다. 그땐 그 시절, 나의 20대, 30대가 왜 그러했는지 또 다른 설명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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