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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 S를 이해하는 순간

MBTI에 대한 사소한 깨달음

by 소소 쌤

* MBTI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으며,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힙니다.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과 소통하며 즐거웠던 기억 중 하나가 ‘서로의 MBTI(성격유형검사) 맞추기’였다. ‘당신의 MBTI가 무엇인가’를 궁금해하는 것은 일종의 관심 표현이었다. 서로가 어떤 사람인가를 추측하고, 맞추고, 이해하는 과정을 16가지 유형으로 구분해 보는 일을 나도 아이들도 재밌어했다.


최근 MBTI에 대한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나에겐 꽤 큰 충격이었기에 글로 남겨본다.

MBTI의 구분 (출처: https://blog.naver.com/adorablejoo96/222905832956)


나는 그동안 I(내향형, Introversion)와 E(외향형, Extroversion)는 어느 정도 명확하다고 생각해 왔다. 학생들은 수업을 하는 나를 보며 E일 거라고 추측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 100% I 인간이다.

T(사고형, Thinking)와 F(감정형, Feeling) 또한 명료하다. 누군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말하면 ‘어쩌다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보험사는 불렀는지’ 원인과 해결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T라면, ‘괜찮은지, 놀라진 않았는지’ 상대의 감정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F라고 한다. MBTI 검사를 했을 때 나는 T라고 나왔지만, 남편과의 부부 싸움을 하면서 내가 명백한 F임을 깨달았다. 이건 오늘의 주제가 아니므로 나중으로 미루고.

마지막 J(판단형, Judging)와 P(인식형, Perceiving)도 명확하지 않은가. J는 계획적인 사람이고 P는 좀 더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여행 계획을 시간 단위로 쪼개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는 사람이다. 수업할 때도 1차시부터 시험을 보기 전 차시까지 모든 반의 진도 계획표를 A4 한 장에 정리한 후 시작하는 걸 좋아하는 J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던 것이 S(감각형, Sensing)와 N(직관형, iNtuition)이었다. S는 좀 더 현실적이고, N은 좀 더 이상적인 성향이라고들 하는데 그게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중학교 친구들과 모임에서 근황 토크를 하다가 정확하게 이 둘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는 극 S와 극 N이 한 명씩 있었는데, 회사에서 일곱 명의 S 성향 동기들과 지내고 있다는 극 N 친구의 근황이 흥미로웠다. SN은 두 가지 상황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회사에서 상사가 말도 안 되는(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요구를 한다. 그럴 때 S는 우선 알겠다고 하고 일을 착수한다. 여러 안을 마련해서 상사에게 당신이 요구한 것이 맞는지 보고하는 반면 N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이해할 때까지 질문을 한다. 그래서 내 친구는 동기들에게 ‘질문 금지령’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던 극한의 S 친구가 '질문은 의미 없다고, 그저 까라면 까는 것이 회사생활'이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S인가 잠시 생각했다. 회사생활에 있어서는 나는 우선 일을 착수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번째 더 큰 차이가 있었다. S는 소감을 말하는 일을 굉장히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S들에게 좋은 건 ‘그냥’ 좋은 건데, N에게 좋은 건 ‘좋은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 이 모임에서 우리 셋은 종종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행은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어?’, ‘30대가 어땠어?’ 같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마다 S 친구는 힘들어했던 것이다. 그날도 그런 질문들을 받으며 S 친구는 빵을 달라 외치고, 급하게 당을 충전했다. 소감을 말하거나 요구하는 나는 분명 N 성향이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INFJ (출처: www.16personalities.com)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떠오르는 몇 가지 순간이 있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소감을 요구했다. 수업을 하건, 영상을 보건, 체험학습을 하건 어떤 순간에 대하여 배운 점과 느낀 점, 어려웠던 점 등 자신이 생각한 걸 꼭 적도록 끊임없이 요구했다. 엄청난 문장 실력으로 장문의 소감문을 적어 오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재밌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같은 짧은 소감을 적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짧은 소감문이 무성의하다고 생각했다. 귀찮아한다고만 여겼다. 그러나 사실 그건 성향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좋은 건 좋은 거지, 어떤 특별한 이유를 생각하거나 쓰는 일이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본 후에 좋았던 내용을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생각을 확장하는 과정을 심하게 좋아한다. 그래서 꼭 무엇을 보고 나면 이런 대화를 시도한다.


나 : 영화 어땠어?

남편 : 재밌었어. 좋은 영화야.

나 : 뭐가 좋았어? (배우의 연기라든지, 영상미라든지, 내용이라든지 그런 걸 기대하며)

남편 : (...) 전체적으로 좋았어.


심지어는 이런 일상도 나타난다.


남편 : (피식)

나 : 왜 웃어?

남편 : 그냥

나 : 그냥이 어디 있어. 웃긴 게 있으니까 웃었을 것 아냐?


계속 파고들어 물으면 어떤 구체적인 답이 나오는데 남편의 생각은 항상 내가 생각하지 못한 깊이가 있어서 그게 참 좋았다. 그런데 문제는 오래오래 파고들어야 나온다는 것. 나는 그게 답답했다. 근데 사실 이것이 남편의 S 성향 때문이었을 수 있다. 무성의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정말 답하기 어려워하는 성향의 차이로 받아들이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삶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사 의미를 찾는 편이라, 심지어 어떤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우울해졌다. 남편은 ‘모든 순간이 의미 있지. 그냥 사는 거지.’라는 조금 더 가벼운 태도를 보이는데 그게 때론 부럽기도 했다. 어쩌면 자석의 S(South) 극과 N(North) 극처럼 MBTI의 SN 성향은 손잡을 수 없는 성향인가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남편과 이 성향에 대한 대화를 한 이후에 나는 많은 상황에서 남편을 이해하게 됐다. 남편 또한 내 수많은 질문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차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내가 속한 세상이 더 넓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때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누군가는 16가지로 사람의 유형을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하겠지만 생각보다 유형별 차이를 인지했을 때 도움이 되는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S와 N

그럼에도 내 주위에 S들에게 작은 바람을 이야기하자면, 소감을 말하는 노력을 조금은 해주길. 소감을 나누는 건 소통의 전제가 되지 않는가. 학생들에게 소감을 요구하는 일도 자제해야겠지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배웠는지를 표현하며 나를 보여주는 일이 세상에서는 필요하지 않은가.

N 성향의 내가 업무를 할 때는 효율을 위하여 생존형 S가 되는 것처럼, S도 수많은 관계 맺기를 위해 소감을 조금은 구체적으로 말해주길.


오늘도 수많은 SN들이 평화롭게 관계 맺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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