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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린이의 캠핑 역사

- 좋아하는 공간에 좋아하는 사람과 머무르기

by 소소 쌤

캠핑을 시작한 건 20년도 7월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지던 시기였고, 유튜브에 캠핑 영상들이 많이 업로드되던 때였다. 캠핑을 하고 싶어 하는 남편의 로망으로 캠핑을 하자 마음먹었지만 캠핑에는 진입 장벽이 있다. 바로 ‘캠핑 장비’. 캠핑 장비의 세계는 가격부터 종류까지 엄청나게 다양했다. 장비를 싸복싸복 하나씩 구입한 것이 2~3개월 걸렸고, 70만 원이라는 비교적 적은 돈으로 미니멀 캠핑을 시작했다.


[구입 품목]

- 원터치 텐트(텐트를 잘 칠 자신이 없었다. 캠핑을 얼마나 좋아하게 될지도 몰랐고.)

- 캠핑 의자(몸이 폭 안기는 형태의, 100kg 이상을 거뜬하게 견딜 의자)

- 감성 테이블(밥을 먹을 곳은 필요하니까. ‘감성템’을 너무나 원했기에 나뭇결의 테이블 구입)

- 아이스박스, 침낭, 에어매트와 에어베개, 휴대용 가스버너, 랜턴, 릴선. 등등



첫 캠핑에서 남편과 나는 부족한 장비를 채우기 위해 집에 있는 조명과 조리도구들을 바리바리 챙겼다. 날이 푸르른 날, 우리가 첫 캠핑장으로 고른 곳은 양주의 ‘벨라 캠핑장’이었다. 독립적인 사이트가 마음에 들었다. 원터치 텐트를 휙 펼치고 테이블을 깔고 앉았다. 그것까지는 좋았는데, 밤이 되니 조명을 달 거치대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둠 속에서 부대찌개를 끓여 먹고, 밤늦게까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과 꿀렁대는 에어매트 때문에 잠을 설쳤다. 열악한 첫 캠핑이었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어나 숲 속을 산책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주변에 거대한 텐트와 엄청난 감성 캠핑 장비들을 보면서 우리 사이트가 비루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래서 장비에 돈을 쓰나 싶었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그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첫 도전은 힘들지만 오래도록 남는다.


그 뒤로 집에 와보면 남편이 하나씩 주문한 캠핑 용품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만 좀 사라고 잔소리하긴 했지만, 아이템 하나하나가 캠핑을 갔을 때 큰 역할들을 해냈다.


[구입 품목]

- 타프(전실이 있는 텐트가 아니기에 햇빛을 가릴 ‘타프’가 필요했다. 타프는 나중에 가족 소풍에서도 나름 역할을 해냈다.)

- 휴대용 히터, 선풍기(덥거나 추운 문제는 캠핑에서 생존의 문제와도 같았다;;)

- 랜턴과 망치, 타프 팩. 등등


두 번째 캠핑은 20년 여름휴가로 갔던 ‘봉화 청량산 캠핑장’이었는데 지어진 지 얼마 안 돼서 깔끔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추천하는 캠핑장이다. 그날은 태풍이 올라온다는 예보 때문에 주변 사이트 예약이 거의 없었다. 다행히 다음날 사이트를 정리할 때까지 심상치 않은 기운만이 느껴질 뿐 태풍 영향권은 아니었다. 좀 더 능숙하게 텐트와 타프를 쳤고, 제법 사이트를 꾸밀 여유가 생겨 여기저기 조명들도 달았다. 여전히 잠자리는 불편해서 제대로 자지 못하지만, 아침 물안개가 끼어있는 풍경을 바라보며 원두를 갈아 내려먹는 커피 한잔의 행복함과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를 듣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 구입 품목 ]

- 그릴(요리 욕심이 있는 남편의 핫 아이템이었다.)

- 폴딩 박스(요것도 감성템인데 캠핑 짐을 담거나 테이블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좋은 날씨를 기다리며 휴지기를 가지고 21년이 되어서야 세 번째 캠핑을 떠났다. 세 번째 캠핑은 형제들과 함께 간 안성 ‘너리굴문화마을 캠핑장’이었다. 깔끔한 건 아니지만 펜션과 데크가 붙어 있어 형제들은 펜션에서, 남편과 나는 텐트에서 1박을 할 수 있어 좋았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늦은 저녁 덜덜 떨면서도 루미큐브를 하며 깔깔대고 웃는 즐거움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비 오는 숲을 바라보며 먹었던 라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다 먹고 난 국물에 면 하나를 더 넣어 또 먹었더랬다.



22년도에는 무엇이 그렇게 바빴는지 ‘변산 오토캠핑장’에서의 캠핑이 다였다. 깔끔함이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사이트도 나름 독립적이었고, 걸어서 서해 바다의 낙조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밀키트를 탁 털어 넣고 버섯들깨 칼국수를 만들어 먹었는데 이게 참 맛있었다. 캠핑장에서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도 즐거웠다. 매번 싼 가격에 두서없이 사 모은 캠핑 장비들이어서 멋은 없지만 나름 우리만의 감성을 가진 캠핑이 되어가고 있어 만족했다.




그리고 23년도 첫 캠핑을 또 다녀왔다. 이번에는 남편 친구 부부와의 동반 캠핑이었다. 안성에 ‘산우물 쉼터 오토캠핑장’이었는데 시설이 좀 오래되고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까지 합치면 9명이 함께 하는 캠핑. 낯가리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은 가기 전부터 긴장 상태였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고 누군가 챙겨 온 두릅을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꼬마들이 있어서 아이들과 보드 게임을 잠깐 했고 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었다. 자리를 치우고 남편은 화로에 장작을 태우며 친구들과 불멍을 했고, 나는 텐트 안에서 글쓰기 수업 마감 날이라 글을 썼다. 옆 사이트의 한 무리가 술을 먹고 다투는 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왔다. 그럼에도 남편이 새로 산, 조금 커져 쾌적한 텐트 덕에 그 안에서 조명에 의지해 글을 쓰는 시간이 꽤 좋았다.



캠핑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힘을 모아 우리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뿌듯함.

코를 자극하는 맛있고 뜨끈한 무언가를 만들어 먹는 즐거움.

커피 한잔을 내리고 책을 읽다가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파란 하늘이나 푸른 산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행복감.


불편한 잠자리도 문제고, 여전히 춥고 더울 때는 캠핑을 할 수 없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한참 먼 캠린이지만, 캠린이답게 이 시기에만 즐길 수 있는 이 감성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쨍한 풍광이 있는 공간에서, 좋은 사람과,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캠핑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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