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설에 떠난 다낭 가족 여행 후기
※ 소소의 배우자(일명 곰)가 쓴 글로, 소소와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은 글입니다.
10여 년 전 여권이란 걸 처음 만들 때는 내가 해외를 굉장히 많이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한국을 떠나 본 적이 없었고, 첫 해외여행을 준비하며 난생처음 여권이라는 것을 만들 때는 내가 그렇게 자주 해외를 나갈 줄 알았나 보다.
몇천 원 차이가 안 난다는 안내를 보고 ‘이왕이면 넉넉한 게 좋지’라면서 50면이 넘는 여권을 신청했다. 그리고 얼마 전 만료된 여권은 채 10분의 1도 채우지 못했다.
괜히 쓰지도 못할 두꺼운 여권은 몇 번 안 되는 출국 때 짐만 늘린 셈이었고, 새 여권을 발급받을 때는 고민 없이 26면의 얇은 놈을 선택했다.
이전에 비해 얇고 가벼운 게 퍽이나 마음에 들었다. 가용 면적이 이전 여권에 비해 절반도 안 되지만, 어차피 10년 동안 그에 절반이나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나는 여행과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통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집에 오래 있으면 답답함을 느낀다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카페든 어디든 나가야 한다나? 집돌이인 나는 당최 이해 못 할 말이다. 먹을 것, 놀 것만 있으면 집 밖으로 몇 달이고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아도 전혀 답답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돈과 시간을 들여 집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 못했다.
배우자를 만나고 나서 조금씩 여행이라는 것을 해보기 시작했다. 어디에 사람을 만나러, 혹은 어디에 무얼 먹으러 등의 목적이 없는, 그저 집을 떠나기 위해 돈과 시간과 체력을 쓰는 여행이란 행위를 비로소 해보게 됐다.
참 낯선 일이다. 떠나기 위해 떠나는 것. 쌓여있는 할 일들을 당기고 밀어 일정을 만들고, 있는 돈 없는 돈 쥐어짜며 비싼 비행기 표를 예매하고, 낯선 곳에서 잠자리를 찾고, 굳이 가서 할 일, 먹을 곳을 찾아본다. 사람 북적이는 공항까지 짐을 바리바리 싣고 와 따로 보내고, 보안검사를 마치고 몇 시간을 기다려 간신히 비행기를 탄다. 그리고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피곤하게 욱여넣고 또 긴 시간을 인내해야 비로소 첫 발을 디뎌볼 수 있다.
장인어른의 칠순 기념으로 어렵게 가족들이 일정을 맞춰 여행길에 나섰다. 여권까지 새로 만들어 들고 베트남 다낭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렸다.
생소하다. 온도, 냄새, 공기의 촉감, 들려오는 소리, 하늘의 높이와 빛깔까지. 국경을 그은 건 사람이고, 지구에는 금이 없는데 묘하게 낯설다. 떠날 때는 겨울이었는데, 이곳은 살짝 더운 기운이 맴돌았다. 경기도 다낭시라고 불릴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여행지라고 해서 큰 기대 없이 떠난 길인데,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생소함 한가운데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베트남도 음력설을 쇤다. 그들은 설을 “뗏 응웬 단(Tết Nguyên Đán 節元旦)” 이라고 부르며,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여긴다. 새해가 되면 각 가정의 운을 맡은 온콩(Ong Cong)과 온타오(Ong Tao)라는 주방신이 하늘로 올라가 지난해 가정의 대소사와 운을 보고한다고 한다. 각 가정에서는 하늘로 올라가는 신들에게 음식을 바치며 제사를 지내고, 이 의식을 통해 새해 가정의 평안과 행운을 기원한다. 또 제사를 통해 조상을 기리며 복을 기원하기도 한다. 대략 일주일간 연휴를 가지며, 이때는 대부분 고향을 찾아 항상 오토바이로 가득하던 베트남 거리가 한산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익히 듣던 악명에 비해 우리는 수월하게 길을 건너 다닐 수 있었고, 여행 기간 내내 시내버스를 단 한 대도 보지 못했다.
새해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한 거리 풍경과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모여 즐겁게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삼십 년 전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는 명절이면 서울 거리가 참 한산했다. 반대로 고속도로와 지방도는 꽉꽉 막혀 도로 한가운데서 밥을 지어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는 풍경이 흔했다.
얼마 전에 제주의 “신구간(新舊間)”이라는 풍속을 들은 적이 있다. 제주에서는 대한 후 5일부터 입춘 전 3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을 신구간이라고 부른다. 이 기간에 제주의 일만 팔천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지난 한 해의 대소사를 보고하고 임무를 새롭게 내려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신들이 자리를 비운 신구간에 이사를 하거나 집을 고치거나 새로 짓고, 쓰레기 등을 태우는 등 신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한다고 한다.
베트남의 뗏 설화와 제주의 신구간 설화가 놀랍도록 닮아있다. 비록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공유하는 심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사람이라는 유대감을 만드는 게 아닐까?
뗏기간 다낭은 상당히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문을 연 가게들도 뗏 연휴를 반납하고 일하는 직원들의 인건비를 평소보다 훨씬 많이 쳐줘야 하므로 뗏 차지를 매겼다.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이름난 사찰이나, 복을 기원하는 소원배를 띄울 수 있는 호이안 올드타운 등은 명절 연휴를 맞은 현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산한 뗏 연휴라고 해도 피크 시간대에는 상당히 많은 오토바이가 도로를 채웠다.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에 타고 있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배달을 위한 수단으로 탄 사람들은 물론이고, 정장을 쫙 빼입은 사람들도 다들 오토바이를 탔다. 3명은 물론이고, 4~5명의 한 가족이 100cc나 될까 싶은 오토바이 한 대를 타고 다니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주변에 펼쳐진 일상의 모습들이 생소함으로 나를 툭툭 치며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임을 계속 일렀다. 무얼 할 필요도 없고,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없이 그저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면 되었다. 오토바이로 가득 찬 도로를 그랩으로 잡아탄,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바라봤다.
다낭의 뗏기간은 꽤나 좋은 기온이다. 한낮에도 20도 안팎으로 햇볕은 좀 따갑지만 그늘은 시원하고, 해가 좀 기울기라도 하면 바람이 금세 선선해져 걷기 딱 좋은 날씨가 된다. 올해 뗏은 우기에 살짝 걸쳐있기도 해서 비가 오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여행 내내 날씨가 곧 잘 도와주었다. 평생 설 명절에 해외를 나와 본 적이 없는데, 1월에 이렇게 좋은 날씨를 누리자니 현실감이 없었다.
짧은 여행 일정이 끝나갈 때, 한국에서는 곳곳에 한파 경보를 발령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귀국을 위해 다낭 공항으로 와서 가벼운 반팔, 반바지를 벗어 접어 넣고, 두꺼운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벌써 묵직함이 느껴졌다.
잠 한숨 못 잔 새벽 비행기를 타고, 아침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 추위가 온몸을 엄습해 왔다. 덜덜 떨어가며 공항을 떠나 무거운 짐들을 매고, 끌어 집에 내려놓았다. 떠나기 전 난방을 서늘하게 낮춰 놓았지만, 밖이 워낙 추워 집에 오니 온기가 느껴졌다. 무거운 짐은 내팽개쳐 뒀지만,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여독이 거의 3일간 빠지지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마치 굉장히 오래된 기억처럼 멀찍이 느껴진다.
Travel은 travail(노고, 일)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같은 어원을 가진 말로는 trouble이 있다.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으나 하나는 사람들이 꽤나 좋아해 찾아서 하고, 하나는 사람들이 마주하기 싫어한다. 서양에서는 멀리 떠나는 일이 목적을 위해서일 때가 많았다. 새 땅을 찾아서, 금을 찾아서, 혹은 정복을 위해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여정은 대부분이 고되고 힘들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관광(觀光)이라는 말을 많이 써 왔다. 빛나는 훌륭한 것을 본다는 뜻이다. 세상을 보고 견문을 넓힌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요즘은 주로 여행(旅行)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굳이 목적을 정하지 않고 떠나기 위해 떠난다. 낯선 곳으로 가서 낯선사람(旅)이 된다. 당장 무엇을 할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는 입장이 되어본다. 그러면 현실에서 나를 내리누르던 무거운 짐들이 마치 남의 일처럼 멀찍이 느껴진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다가 옆에서 훈수 두는 입장이 되면 더 잘 보이는 수들이 있다.
집에서 푹 자며 여독을 풀었다. 집이 참 소중하게 느껴졌다. 원래도 집돌이인데, 며칠씩 여행을 다녀오면 집이 더 좋아 찰싹 달라붙는다. 전보다 더 격렬한 집돌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