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움(Audeum)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관람 후기
※ 소소의 배우자(일명 곰)가 쓴 글로, 소소와 비슷한 듯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은 글입니다.
소소(나의 아내이자, 브런치의 주인장)가 나를 위한 선물을 쥐여줬다.
본격 비영리 오디오 박물관, 오디움(Audeum)의 전시인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관람!
소소는 소리를 싫어한다. 정확하게는 충분한 공간이 동반되지 않은 소리를 싫어한다. 공간에 비해 큰 소리나, 지속해서 나는 소리를 싫어한다. 그래서 서재에 함께 있을 때 음악을 계속 틀어 놓을 수 없다.
반면 나는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각종 잡기에도 관심이 많아(자금과 게으름 문제로 잘하지는 못한다) Hi-Fi에도 관심이 있었다. 물론 가격을 보고 뜨악해서 가졌던 관심을 황급히 버렸다. 그래도 그 아쉬움의 흔적이 저렴한 앰프와 패시브 스피커가 조합된 PC-Fi로 남아있다.
입문용으로 중국산 TR 앰프(SMSL ad18)와 스피커(Eltax Monitor1)를 사용했는데, 음악을 좀 오래 들을 때면 소소가 거슬린다고 성화해서 좀 덜 거슬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사실 진공관을 써보고 싶었다) 알리발 진공관앰프(Oldchen EL34)로 기변을 했다. 소소의 성화를 잠재우는 데는 실패했지만, 내 귀에는 대만족이라 지금까지 잘 사용 중이다.
소소는 전시를 보는 걸 좋아하지만, 이렇게 오디오를 싫어한다. 어느 날 전시를 함께 가자고 말하며 “오빠를 위한 전시야”라고 말했을 때는 와닿지 않았지만, 다녀오고는 깨달았다. 진짜 나를 위한 전시였다.
소소는 딱히 즐거워하지 않았다. 전시를 보고 나면 늘 뭐가 좋았고, 어떤 부분이 어떻게 느껴졌고, 어떤 걸 또 보고 싶고 등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오디움 관람 후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가 감상이다.
그렇다. 오디움은 친절한 곳이 아니다.
전시의 제목은 정음(正音, High fidelity)이다.
전시는 무료로 예약할 수 있으며, 약 20명 내외의 인원만 한 회차에 예약이 가능하다.
소소가 인스타그램에 뜬 예약 공지를 보고 알람을 해두었다가 예약을 했는데 꽤 예약 마감이 빠른 편인 것 같다.
마치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을 보는듯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도슨트 시작 10분 전부터 발권이 가능하다는 안내와 함께 대기 공간으로 유도한다. 대기 공간에서는 건물을 설계한 쿠마 켄고와 건물 내 사이니지를 디자인한 히라 켄야의 인터뷰 영상이 재생 중이다.
투어 10분 전이 되면 QR코드를 찍고 입장권을 받은 후 다시 대기 공간으로 입장, 몇 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본격적인 투어가 시작된다.
에디슨의 축음기부터 최초의 하이파이 시스템, 가정용 하이파이 시스템, 주크박스, 오르골 등 역사적인 빈티지 오디오의 장이 펼쳐진다.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귀한 오디오 시스템들을 보며 박물관을 돌아볼 수 있다. 투어 진행 중에 중요한 시스템의 경우 실제로 들어볼 기회들도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투어다. 심지어 이 모든 게 공짜다. 단, 주차는 유료. 박물관 바로 옆 건물 주차장이 더 저렴하다.
중간에는 카메라를 전시한 공간도 있다. 익숙하게 사용했던 코닥, 캐논, 올림푸스뿐 아니라 라이카 등 고가의 카메라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윽고 오디오 감상을 위해 기둥을 주름천으로 감싼 마지막 방에 도착한다. 거대한 오르골로 한쪽 벽면이 가득 차 있고, 반대편 벽은 수많은 LP 앨범으로 채워진 방이다. 그곳에서 몇 곡의 음악을 더 들으며 투어가 끝난다.
오디오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세상 영양가 없는 전시라 할 수 있겠다. 빈티지 하이파이 전시라 할 수 있겠으나 오디오에 관한 기초적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도슨트는 아니다.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전시는 아니고, 이미 관심과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권할 만한 전시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눈과 귀가 호강하는 좋은 기회였다. 돈 많은 회장님이 본인의 로망을 실현한 김에 문화 예술적 사회 기여의 장을 마련한 느낌이다. 소소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약간의 불만 섞인 평을 들으며 생각했다. “아, 이건 정말 날 위한 선물이군!”
이렇게도 관심 없는 사람이 있는 반면, 오디오에 몇십, 몇백억을 투자하는 마니아들은 뭘 위해 그렇게도 매달리는 걸까 생각해 본다.
오디오는 기본적으로 과거를 지향한다. 과거의 어느 한때 발생했던 소리를 기록하여, 미래인 현재 어느 한때 재생한다. 그래서 좋은 오디오는 기록 그대로 재생하는 오디오를 뜻한다. 높은 충실도(High fidelity)로 소리를 재생하는 시스템이 좋은 오디오다.
Hi-Fi라는 말에는 원본을 향한 갈망이 녹아있다. 사람의 중요한 특성 중 하나가 모방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모방한다. 타인뿐 아니라 자연물, 현상, 소리 등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원본을 더 훌륭하게 모방할수록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모방하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원본은 특별함을 가지게 된다. 특별함을 지니는 원본일수록 많은 사람들은 더 그것을 닮고 싶어 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오리지널리티를 갈망한다.
문화 예술에 여러 장르가 있지만 공연, 특히 소리는 오리지널리티가 매우 강한 분야다. 동일한 사람이 동일한 노래나 연주를 한다고 해도, 그날의 기분, 컨디션, 장소, 온도, 습도 등에 따라 유일한 콘텐츠가 된다. 그래서 그것을 그대로 기록했다가 원하는 때에 원음에 충실하게 재현할 수 있는 수단은 사람들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갈망과 맞아떨어진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로부터 쌓여온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보고 싶어 하지만, 볼 수 있는 건 언제나 과거뿐이다. 그리고 과거는 늘 왜곡된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 오디오, 영상 등을 통해 다시 볼 수 없는 모습들을 기록하려고 한다. 현재를 기록하는 것은 미래의 내가 볼 것을 기대하는 행위다. 마치 우리는 룸미러만 보며 앞을 향해 차를 몰아 나가는 거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불안하게 느껴지지만, 과거의 추억을 보며 즐거워하고, 미래에 찾아볼 것을 기대하며 추억을 기록한다. 과거와 미래에 한발씩 디뎌가며 또 하루 사는 게 아닐까.